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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Aug 23. 2019

마음에 추위가 깃들면

경상도 음식 [갱시기]




    밤새 내린 눈이 녹아 거리가 축축해진 어느 날, 나와 그녀는 그녀의 신혼집을 계약하러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여기저기 뚝뚝 떨어지는 눈 녹은 물과 볕은 반짝거렸지만 척척하게 젖은 땅을 운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볕이 들지 않은 곳은 아직 얼어 있던 겨울날이었다. 계약서라는 것이 눈 앞을 흐려지게 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어 사인하는 그녀 곁에서 두 어 발쯤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계약을 마치고 나, 그녀 그리고 집주인과 함께 집을 보러 갔다. 살던 사람들이 이삿짐을 거의 다 나르고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집을 휙 둘러보는 동안도 나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 마냥 종종 거리다 겨우내 집으로 돌아왔다. 잠이 부족한 탓도 있고 척척한 거리도 별로였고 그 날의 계약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피곤함이 몰려오게 하는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우리 집에 도착해 풀리는 긴장과 함께 늘어져 있었다. 긴장이 풀린다는 소리는 뱃속에서 먼저 나왔다. 배가 고팠다. 

우리는 문득, “갱시기”나 끓여 먹을까


나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갱시기 어떻게 끓여 먹어?”

“응?”

“갱시기 말이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갑자기 그게 먹고 싶어?”


엄마는 적잖게 놀란 목소리였다. 그냥 갑자기 그게 먹고 싶다고 하니까 금세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갱시기는 경상도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만 끓여 먹는 찌개도 아닌, 국도 아니고 죽도 아닌 뭐 그런 거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입맛이 없으시다며 끓여 먹거나 가끔 나와 동생에게도 줬었는데 흡사 개죽 같이 생긴 것이 빨갛지도 않고 허여멀건한 김치와 콩나물과 밥이 한 데 엉켜 있는 모습이었다. 가끔 할머니와 엄마가 대충 한 끼 때우자는 식으로 갱시기를 내올 때면 나는 입이 대빨 나오고 말았다. 대체 이게 음식이긴 한 건가 하면서 말이다. 

그녀도 나와 같은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서른 어느 즈음부터 볕도 없이 구름만 가득한 겨울날이면 갱시기가 먹고 싶었다고 했다. 때마침 눈을 녹이던 아침햇살은 온데간데없이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각자의 전라도 남편의 음식 부심과 우리가 전라도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은 걸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갱시기가 생각났었고 그녀에게는 마침 딱 그 날씨가, 나에게는 갱시기의 기억을 되살려 준 그녀가 있어 때마침 먹기에 찰떡인 음식이었다. 

    

외투를 입고 마트에 나가 콩나물 한 봉을 사 왔다. 엄마가 일러 준 방식은 정말 엄마가 밥을 하기 싫을 때 해 먹었을 거라고 생각될 만큼 간단한 조리법이었다. 하지만 나와 그녀는 경상도이지만 그 안에서도 다른 지역에 있었던 만큼 가장 갱시기다운 갱시기를 끓여 먹기로 했다. 멸치육수를 내고 푹 익은 쉰 김치를 넣는다. 김치가 어느 정도 익을 쯤에는 찬 밥, 떡국 떡 한 줌을 넣고 기호에 따라 면을 넣기도 한다. 탄수화물 중독에 가까운 우리는 밥, 떡, 면을 다 넣었다. 냄비에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어주다가 밥알도 풀어지고 떡도 흐물흐물해지면 콩나물을 넣어서 한 번 더 푹 끓인다. 살짝 다진 마늘을 넣고 너무 허여멀건하다 싶어 고춧가루를 착착 두어 번 털어준다. 

그녀가 말해준 핵심은 큰 솥에 끓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큰 손에 팔팔 끓여주는 거다. 2인 분에 딱 맞게 끓이면 맛이 없다. 

우리는 마주 앉아 양재기(양푼 또는 큰 그릇을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와 수저 하나씩만 딱 놔두고 가운데 큰 갱시기 냄비를 올렸다. 국자로 양껏 양재기에 퍼 담아 호호 불며 입 속에 넣는다. 이 십여 년 만에 먹는 갱시기였다.


집 계약을 마치고 집을 둘러보는 동안 멀미 기운이 있던 그녀와 두어 발쯤 멀찍이 떨어져 피로감을 숨기던 우리는 다 풀어져 씹는 맛이 나지 않을 정도의 밥과 떡처럼 풀어지고 있었다. 특별한 말도 없이 그나마 씹는 맛이 나는 김치와 콩나물을 몇 번 삼키고 국물을 마시듯 먹는 갱시기의 맛을 그 겨울, 그녀가 없이도 나는 종종 해 먹었다. 큰 솥에 끓여 혼자 먹고 남은 갱시기는 냄비채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다시 물을 좀 넣고 간식으로도 끓여 먹고 두 세끼를 해결하기도 했다. 

엄마나 할머니가 갱시기를 줄 때면 이게 뭐냐고 빈죽거리던 나는 어느새 사라지고 겨울 내 추운 날씨가 마음에 깃드는 날이면 나는 갱시기를 끓여 먹었다. 


그녀와 갱시기를 먹던 날,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전라도 출신의 남편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음식이라고. 남편들로부터 마음에 추위가 깃들면 우리는 만나서 갱시기를 끓여먹기로. 그러니 그들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맛이다.








왜 갱죽일까. 갱은 제상에 올리는 ‘메와 갱(羹)’ 할 때의 그 갱인 것 같다. ‘메’는 밥이고 ‘갱’은 무 같은 야채와 고기를 넣고 오래 끓인 국이다. 죽은, 말 그대로 죽인데 물이나 국에다 밥을 넣고 끓여서 만든 죽이다. 쌀알을 넣어 끓이는 죽과 달리 이건 한번 밥이 된 것을 다시 끓인다는 게 다르다. 아아, 그러고 보니 갱죽은 ‘다시 고친다’ 할 때의 ‘갱’(更)인지도 모르겠다. 갱죽의 다른 말인 ‘갱시기’는 ‘갱식’에서 나온 말이며 밥과 반찬에서 다시 모습을 바꾼 음식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한겨레 21- 성석제의 음식이야기 [갱죽]구정물 한 양동이, 갱죽 한 사발>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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