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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미 Aug 29. 2019

꼰대가 되기 전에

이미 꼰대 일지 모르지만 나는 꼰대를 자처하기로 했다



    최근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 도서가 화제다. 브런치를 통해 드문드문 연재를 봤고 출간된 이후 바로 구입했다. 지난 직장에서 나를 포함 몇몇을 제외하곤 전부 90년생 사회 초년생인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점이나 이십 대와 다른 나를 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 중 전부를 다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석훈의 <88만원세대> 책이 나왔을 때, 당시 이십 대 였던 나는 열광했었는데 <90년생이 온다>에 대해 이십 대들의 생각이 어떨지 궁금하다. 과연 그들은 이 책의 내용에 얼마나 공감할까.




    회사 동료로 만났지만 좋은 술친구로 남은 녀석 둘과 가진 술자리였다. 우리는 가끔 만나 술과 함께 맛있는 안주를 놓고 이런 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나와 한 녀석은 동갑내기고, 다른 녀석은 삼십 대 초반이다. 누가 정해준 적 없이 우리 사이는 자연스레(?) 나이 서열로, 삼십 대 초반의 녀석이 막내가 되었다.

    어느 날 나는 말했다.

    “나 꼰대 할 거니까.  막내, 가서 소주 한 병 가져와.”


사실 우리는 이 말에 질색팔색 하진 않았다. 꼰대가 할 만한 말을 내가 흉내 낸다는 것과 어디 가서 완벽하게 막내가 될 나이가 아닌 우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스갯소리로 ‘여기서 막내 오랜만에 해보네’라는 식으로 이해할 뿐.

어찌 되었건 간에 나는 왜 꼰대가 되겠다고 했을까. 사실은 꼰대가 아닌 척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느낄 때가 있다. <90년생이 온다> 책에서 언급된 밀레니얼 세대 이면서도 80년대 생으로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 40, 50대와 함께 초년생 시절을 보냈고 회식은 회사 업무의 연장, 나름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가지고 있었고, 가져야 하는 줄 알았다. 또래들이 함께 꼰대라고 부르는 그들과 어쩔 수 없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몇 군데의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걔 중에는 ‘또라이’로 찍혀 꼰대에 대항하는 사람이 되어 있기도 했다. 특히 첫 회사에서 그러했는데. 때문에 대부분의 중간 관리자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다. 너무 할 말을 다 한다는 이유인데, 돌이켜보면 그때도 할 말을 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꼰대가 될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는 다른 직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꼰대를 자처한다.

스스로 꼰대임을 자처하는 이유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깃든 나이 듦과 내가 살아온 환경이 꼰대가 되지 않는 길로 나져 있진 않은 점도 있다.

늘 막내였다. 아직도 일정 그룹에선 내가 막내다. 느지막이 대학 졸업한 이십 대 중간쯤, 나와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던 사람들 중 서너 명을 제외하곤 모두 30 - 40대의 사람이었다. 당시 자수성가했다는 평가를 받는 한 오빠가 있었다. 그는 호탕한 성격이고 뭐든지 자신이 앞장서서 해결하는, 우리 사이에서는 잘 벌고, 잘 놀고, 유쾌한 멋진 오빠였다. 나 역시 그와 가까워지길 원했고 특유의 또라이 느낌 때문인지 금세 그와 가까워졌다. 동호회 모임 이후 잦은 술자리를 가졌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내 꿈은 너무 멀기만 하다는, 술자리 하소연을 하던 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연히 또래들과 한숨 쉬며 할 법한 그러한 이야기를, 적어도 열 살은 많은, 나름의 인생 선배들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그를 멀리 할 수밖에 없었다.

    ‘노력하지 않아 보인다. 글 쓴다는 것이 이렇게 매번 술 먹고 너가 벌지 않은 돈으로 술값을 내고 이럴 시간이 있는 것이냐. 취직을 하거나 하다 못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남은 시간을 쪼개 글을 써도 모자랄 판 아니냐. 예술을 한다는 것은 배고픈 일이고 절박해야 하는데 너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답은 대강 그러했다. 일부 오역이 담겨 있더라도.  사실은 더 거칠게 오역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뭔데 나의 노력을 단정 짓는지, 예술 혹은 글쓰기가 되었든 간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함에 있어야 배고픔과 절박함이 필수라는 것은 굉장한 고정관념이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그림이 잘 그려지거나 글이 잘 써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일은 당신이 먹고살고자 하는 일이 아니던가? 예술도 먹고살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력한 당신과 자아실현이 삶의 목표인 나는 그 길을 가는 과정이 다를지언데 당신은 무슨 자신감으로 나의 삶과 꿈을 재단하는가.'라고 하지 못했다. 그와는 멀어졌지만 이후 몇 년은 그 말들을 수십 번 해체했고 때로는 나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용도로 썼다.

지금 그의 나이가 되어 생각해본다. 내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고민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과연 어떤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꼭 말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술이나 사줬을 거 같다. 






    무언가를 이뤘다고 자위하는 사람의 경우 보다 거친 충고와 조언을 통해 꼰대가 된다. 지금껏 무엇을 이뤘다고 할 만 것이 없어 때로는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때로는 쓸쓸함이나 외로움 따위로 포장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감정은 얻는다고 얻어지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털어지고 힘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거친 충고와 조언은 그동안의 내가 꼰대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중 하나다. 그 거친 충고와 조언은 때로는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도 했고 누군가에게는 꼰대질로 누군가에는 예의 없음이 되었으리라. 나는 경험을 무기 삼고 책과 음악, 넓고 얄팍하게 아는 지식으로 꼰대가 되어왔다. ‘라떼 이즈 홀스 = 나 때는 말이지’라는 말이 꼰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고 되묻게 되었다.

하지만 얄팍한 지식과 경험이 나를 꼰대로 만들고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론 좀 억울했다. 얄팍한 지식이나 경험이라 하더라도 시간과 의지, 때로는 암기력까지 포함된 나름 노력의 산물이기도 했다. 어떠한 노력의 산물들은 여과 없이 인정을 원하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인정이 너무도 인색한 세상에 살고 있다.


<90년생이 온다>에 실린 “신 직장인 꼰대 테스트”를 해본 결과 나는 꼰대였다.

1.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요즘 세대를 보면 참 도전정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2. 헬조선이라고 말하는 요즘 세대는 참 한심하다.
3. 회사에서의 점심시간은 공적인 시간이다. 싫어도 팀원들과 함께 해야 한다.
4. 윗사람의 말에는 무조건 따르는 것이 회사 생활의 지혜이다.
5.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나이나 학번을 물어보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속이 편하다.
6. ‘정시 퇴근 제도(패밀리 데이)’는 좋은 복지 혜택이다.
7. 휴가를 다 쓰는 것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8. 1년간 ‘육아휴직’을 다녀온 동료 사원이 못 마땅하다.
9.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후배 사원이 거슬린다.
10. 회식 때 후배가 수저를 알아서 세팅하지 않거나, 눈앞의 고기를 굽지 않는 모습에 화가 난다.
11. ‘내가 왕년에’, ‘내가 너였을 때’와 같은 말을 자주 사용한다.
12. 편의점이나 매장에서 어려 보이는 직원에게는 반말을 한다.
13. 음식점이나 매장에서 ‘사장 나와’를 외친 적이 있다.
14. ‘어린 녀석이 뭘 알아?’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15. 촛불집회나 기타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학생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16.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란 말에 동의한다.
17. 낯선 방식으로 일하는 후배에게는 친히 제대로 일하는 법을 알려준다.
18. 자유롭게 의견을 얘기하라고 해놓고 내가 먼저 답을 제시한다.
19. 내가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20. 회사 생활뿐만 아니라, 연애사와 자녀계획 같은 사생활의 영역도 인생 선배로서 답을 제시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21. 회식이나 야유회에 개인 약속을 이유로 빠지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22. 내 의견에 반대한 후배에게 화가 난다.
23. 자기 계발은 입사 전에 끝내고 와야 하는 것이다.

0개 : 대단합니다. 당신은 꼰대가 아닙니다.
1-8개 : 꼰대입니다. 심각하진 않지만 꼰대가 아닌 것도 아닙니다.
9-16개 : 조금 심각한 꼰대입니다.
17-23개 : 중증 꼰대입니다.


    내가 해당되는 부분은 2개 정도인데, 꼰대였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세대 역시 꼰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꼰대는 남녀노소 불문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꼰대이거나 어리다고 해서 꼰대가 아니라는 법도 없다. 자신이 믿는 가치관에 따른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세대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꼰대가 되는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삶의 형태가 바뀌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해 가는 속도는 나이가 들면서 느려질 것인데 이것은 사실상 느려진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쫓아가기 힘든, 상대적인 시간 속에 속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꼰대가 되기로 한 것은 꼰대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함도 있다. 사실 나는 꼰대가 아닐 수도 있다. 아니길 바랄 뿐이다. 나는 오지라퍼가 아닐 수도 있다.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바란다고 해서 안 될 수만 있다면 어떠한 모습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물 떠놓고 빌겠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속하고 살아온 세계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존재이다. 그것이 때로는 자신의 전부일 수도 있고, 일부 자신의 모습이 그렇다 한들 모든 모습이 자신의 계획대로 형성되지 만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꼰대가 되고자 함은 부정적인 의미로 쉽게 누구를 비난하면서 당신은 꼰대입니다로 일축해버리는 문화에 대한 소심한 반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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