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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Mar 28. 2017

영어가 필요했던 순간이었나?

말이 없어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


내가 두브로브니크에 머물렀던 기간은 그들의 독립기념일이 포함된 날들이었다. 매일 광장에서 오케스트라를 연습하고 마지막 날 행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고 그만큼 관광객뿐 아니라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참 많았던 한 여름이었다. 


구시가지 안 성벽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집에 묵은 나는, 첫날 그 어마 무시한 계단을 큰 트렁크를 든 채 낑낑 매며 올라가야 했지만 그곳을 떠날 때는 성곽 밖으로 둘러진 긴 길을 편히 걸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돌아온 나는 숙소의 선택이 여전히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화장실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두브로브니크의 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하루는 항구 쪽에 나가 저녁을 먹고, 하루는 구시가지 내 어디든 앉아서 밥을 먹었다. 떠나기 하루 전날 이 곳에서 든든한 식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건 곧 육식을 의미한다. 

고기 냄새를 풍기던 숙소 바로 옆집이 두브로브니크에서 유명하다는 화덕 스테이크 집 "lady pipi"였다.

지붕(?)이 덩굴로 되어 있어서 비가 오면 영업을 할 수 없는데....

존재를 알고 가려했던 7월 10일 비가 왔다. 바로 옆이 숙소였던 나는 허탕치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도 맛을 보긴 글렀다 싶어 아쉬웠다.

저녁쯤 성벽 투어를 마치고 내려오니 마침 저녁 장사를 시작했다. 그들도 종일 쉴 순 없었나 보다. 비는 오락가락했지만 멈춘 상태였다. 나는 그곳으로 몇 걸음 걸어갔다.

많지 않은 테이블이라 혼자 온 나를 앉혀줄 만한 곳이 있나 싶었다. 앞에 선 프랑스 여자 2명이 넓은 자리로 안내되면서 내 뒤에 있던 여행객 2명이 합석하게 됐다. 그리고 내 차례. 난 옆에 서 있던 훈남훈녀 커플과 합석하게 되었고 이내 그 자리엔 다른 커플까지 총 5명이 앉았다. 나만 혼자였고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서로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니 난 한국, 훈남훈녀 커플은 남미 어디였던 듯... 그리고 나중에 합석한 커플은 오스트리아. 그러더니 갑자기 불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영어를 하냐고 묻더니 불어로 얘기하는 건 뭘까 하면서 조바심 끝에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한 오스트리아 커플 중 남자는 말이 많았다. 4명 모두 길쭉하고 늘씬하고 훈훈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저 눈요기로 그들을 보거나 풍경을 바라봤다. 주문할 때 모두 두브로에서 유명한 해산물 요리를 시켰지만 난 고기를 시켰다. 화덕에 구운 스테이크가 먹고 싶었거든.

대화는 계속됐다.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이는 오스트리아 커플은 단정한 카라가 있는 티셔츠와 반듯한 반바지를 비슷한 느낌으로 입은 반면, 남미의 그들은 흡사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남자는 까무잡잡한 남미의 피부색과 검은 곱슬머리에 넉넉한 화이트 셔츠를 입고 있었다. 내가 마구 초등학생처럼 느껴졌던 이유는 그저 기분 탓이겠지.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에게 여행한 곳을 물었고 한국의 휴가에 대해 물었다. 난 좀 더 멋지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전쟁통이었다. "한국의 휴가는 짧다. 이렇게 여행할 수 없다. 회사를 그만두고 온 거다.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저 말들을 유치원생 용 단어로 말한 거 같다. 아무래도 내가 저들보다 어린아이처럼 느낀 이유는 원활할 수 없는 의사소통 때문 인 듯하다.


혼자 여행 다니면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일은 없었다. 고작 영어로 대화하는 사람이 호텔 직원 정도뿐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영어를 좀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은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불어로 나누는 이야기가 뭔지는 알았다. 조금 배워간 불어 덕이었을 터. 여행지에서 난 뻉소니 교통사고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 입이 근질근질거렸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다는 영어도 그나마 그래서 그만큼인데 두어 달 배운 불어는 입을 벌렸다간 낭패일 수밖에 없었다.

대화가 이어지던 중 비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종업원들이 식사 중이거나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색색별 우산을 줬고 우리 테이블은 우산이 3개였다. 커플들. 그리고 나.
우산을 들고 고기를 썰 수 없었다. 서로 썰어주고 먹여주는 걸 보다가 나는 목에 우산을 걸치고 고기를 썰었다. 고기를 먹다 담에 걸릴 수도 있구나 싶었던 날이었다.

고기는 금방 식었고 비가 더 세차게 내리니 오스트리아 커플은 급히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내게 "good trip"이란 말을 남긴 채.

남은 커플은 먹어주고 생선 발라주고 뽀뽀하고 남자는 애교 부리고.. 

'아 풍경 안에서의 외로움은 별 거 아니었다.'극도의 스트레스 상태로 접어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 비는 그쳤고 큰소리로 웃었다. 영어도 불어도 못하는 나와 훈남훈녀 커플들 사이에서 극도의 스트레스 고기를 먹은 나였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뒷 테이블은 한국인들로 구성된 테이블이었다. 이런저런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묘하게도 나는 그 자리가 부럽진 않았다. 두 커플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을 순 없었지만 내가 여행에서 부딪힐 수 있는 현실이 그 안에는 있었다. 오스트리아 커플이 떠나고 남미 커플과 내가 앉아 있을 때 비가 더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보고 그냥 웃었다.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든 간에 난 그 장면이 기억에서 떠나질 않는다.


오래전 알고 지내던 지인인 시인님의 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그날 그곳엔 핀란드와 노르웨이 출신의 예술가 부부가 방문한 터였다. 그들과 섬을 둘러보고 오라는 말에 덜컥 겁이 났지만 차도 없던 때라 얻어 타고 한 바퀴 돌고만 오자 싶어 나섰었다. 그들과 나는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그들이 이 섬을 참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 뒤에 난 진풍경이라고 여기는 장면을 목격한 바 있다. 시인님은 영어 한 마디 안 하고 부부는 영어, 핀란드어 등으로 말을 하는데 그 시간이 족히 서너 시간은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그분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그는 말했다. 표정이 있잖아.라고.


물론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고 명료할 순 있겠으나 비가 들이치고 얼른 식사를 마쳐야 하는 그 상황에선 그들과 내가 눈을 마주치고 황당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웃었던 상황은 다른 말이 더 필요 없었다. 아직도 시인님과 부부의 대화는 미스터리 하지만 이제야 짐작해보건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중요한 건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는 점, 그 자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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