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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나를 갉아먹는 가해자가 사랑인지, 나 자신인지 분간하는 일. 이때 앞 장에서 말한 그 방법을 사용하면 된다. 사랑을 잃은 뒤에 따지는 건 소용없다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직 사랑은 내 손 안에 있으니까. 아직 선택은 남아 있으니까. 이 사랑을 잃었을 때 내가 얻게 될 것들을 차분히 계산해보는 것. 그렇게 혼자 따져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었지?’ ‘이 사랑을 잃어도 나는 얻을 게 이렇게 많은데?’ 그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부터 태도가 달라진다. 사랑을 붙잡고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기고 “될 대로 되라”는 체념이 아니라 “나는 나를 잃지 않겠다”는 확신이 자리 잡는다. 나는 이 사랑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되, 그것이 나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는 상태.
이 경험을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나는 나를 더 이상 갉아먹지 않게 되었다는 걸.
동시에, 사랑은 나를 상대로 한번 패배한 셈이다. 마치 가위바위보 삼세판에서 내가 먼저 두 번을 이겨둔 것과 같다. 설령 마지막 한 판을 사랑이 이긴다 하더라도, 다시 말해 사랑을 잃게 되는 순간 (사랑이 가해자라는 오해를 섣불리 판단으로 내린 것)이 온다 하더라도, 나는 이미 두 번을 이겨둔 상태이기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어진다. 더 이상 구렁에 빠질 이유도, 힘들어야 할 이유도 없는 거다. 어차피 승자는 나니까. 사랑이 겨우 한 판을 이겨서 떨어져 나가는 퍼포먼스를 취해도, 나는 이미 얻을게 많고 어쩌면 이미 얻은 셈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얻을걸 미리 얻었으니, 매달리고 굴복할 이유도,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휘둘릴 이유도 없다는 마인드가 생기는 것이다.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남아 있느냐다.
결국 사랑도 삶의 일부다. 삶 전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때는 사랑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전부가 되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나머지를 잃기 시작한다. 나를 지키는 일,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일, 나라는 사람의 시간과 존엄을 보존하는 일은 그 어떤 관계보다 먼저여야 한다.
나를 잃지 않는 사랑을 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지금 내가 지키려는 것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두려움인지.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관계인지, 아니면 나를 소모시키는 집착인지. 그리고 설령 놓게 되더라도, 나는 남아 있는지.
사랑을 선택하든, 놓는 쪽을 선택하든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다. 그 선택 끝에 내가 온전히 남아 있느냐는 것. 나를 지키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은 결국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나 자신일지 모른다.
이 글은 그 질문을 미리 꺼내두기 위한 기록이다. 언젠가 마음이 흔들리는 날, 적어도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도록. 무엇을 지켜야 내가 남는지에 대하여.
이것이 바로, ‘지키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