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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Jun 03. 2021

재난은 공평하지 않다

강준만 교수의 칼럼을 읽고

맞다.
재난은 가난을 차별한다.

10년 전이다.
생애 처음 지진이라는 재난을 겪었다.
렌트 하우스에 살면서, 엿새 일해서 이레를 사는 사람에게 닥친 재난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공황으로 시작했다. 바쁘다는 표현이 사치였는데 갑자기 할 일이라고는 없는 순식간의 올스톱이었다.

이후에 처절히 배운 것이 있다.
이런 재난을 통해서 있던 재산이 두배, 세배로 늘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그나마 있던 바닥의 찌꺼기마저 다 털려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벌려진 빈부 격차는 그대로 고착되어 버렸다. 지진뿐이랴, 지구촌 어디에서나 재난과 재해가 어느 하루도 끊이질 않는다.  내가 겪은 그 지진이 가르쳐 준 것은 그 재난 앞에 무력한 계층이 있다는 것이고, 그들의 재난은 밤에 도둑같이 와서 강도당한 그 상황을 고착시켜 버린다. 그 덕에  끊이지 않고 괴롭히는 의문이 있다.  

네 식구 한가족이 한 끼 밥을 먹더라도 다 같이 행복하고 만족할 방법이 없다. 하물며 오천만 또는 오백만의 인구가 다 같이 설득되는 제도와 법은 없다. 오천만 개 또는 오백만 개의 법과 제도가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그물망은 누구에게는 너무 성글거나 너무 촘촘해서 불법, 탈법과 월법을 넘나들기 충분하거나 경계선에 걸려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간극을 어떻게, 무엇으로...?

도처에서 벌어지는 온갖 격차 특히 빈부 격차는, 재난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착각, 그릇된 교육과 집단 최면을 먹고 자란다.

1998년이던가, lMF 체제 시절, "고통분담"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누군가의 분명한 의도에 만들어졌을 그 단어를 생각하면 "누구냐? 나와라" 하는 충동이 일곤 한다.
고상하다 못해 아름답기 조차한 그 단어의 힘이 얼마나 강렬했든지, 시민들 장롱 속의 금붙이가 바깥으로 나왔다. 금붙이와 함께 일자리가 사라졌고, 거대 재벌은 공룡이 되었다. 원인을 제공했던 탈법, 불법과 월법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커넥션은 처벌을 받지 않았고 노동시장에만 책임을 돌렸다. 오늘의 기형적인 발전과 왜곡된 고용시장은 그 결과물이다.

이후에 나온 기록물들은 보여준다. 정치 걍제의 최고위층 그들 원인제공자들인 이익 공동체의 커넥션들이 벌린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행위들과 몸집을 블려서 새로운 황제들이 되었다.  
그때 어느 일각에서 "이대로...!"를 건배사로 삼았던 부류의  들이 지금 또한 새로운 포획물을 찾아서 같은 구호를 부르고 있으리라 확신하곤 한다..

이 또한 재난 중의 재난이었다. 재난은 벼락같이 덮치고 결코 공평하지 않다.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933642.html?_fr=fb#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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