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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Sep 06. 2021

노랑색 꽃이 처음 온다

겨울이여 안녕

겨울의 끝자락 8월이면 윈터 로즈 또는 크리스마스 로즈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름만 봐서는 영국 태생임이 분명하다. 크리스마스가 한 여름인 뉴질랜드에서 이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으니.  한여름을 넘겨서 늦여름에 몇 번 속고 나면 새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여름 내내 햇빛에 고생으로 바래진 여름 화초 잎들 사이로 윤기 흐르는 여린 이파리가 빼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가 내리고 축축해지는 가을이면 단연 푸른 잎들이 쏟아지다가 겨울의 꼭대기 8월이면 꽃이 핀다. 이 꽃들의 색깔을 좋아한다. 일조량의 영향이겠지만 화려하지 않은, 이파리 색과 비슷한 소박한 꽃과 이파리들이 겨울 가든의 주인공이 된다. 

8월의 진객, 천리향이 향기를 뿜노라면 아직은 겨울이지만 봄도 이라고 믿게 된다.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천리향을 처음 보았다. 그때는 이름이 뭔지도 몰랐는데 그 향이 놀라웠다. 남편이 이민 와서 처음 꺾꽂이를 해서 키워보겠다고 나섰는데 정작 많이 실망한 눈치이다. 그토록 좋아한 향기였지만 여기서는 한국만 못하다고 불만이 많다. 아마도 기후 탓이리라. 사계절이 뚜렷한,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더워서 말도 못 하는 한국 기후 라야.... 뉴질랜드의 좋은 기후에서는 그만한 향을 기대해서는 안될 노릇이다. 몇 년을 시도했다가 번번이 제대로 모습을 갖추질 못했는데 5년 전에 이사 와서 처음 했던 이 손바닥만 한 어린 녀석들을 동쪽 창문 아래 심는 일이었다. 작년까지는 여전히 키도 작고 꽃도 부족했는데 올해부터는 봐줄 만해졌다. 한국에서는 양지식물이었는데 여기서는 음지식물이라고 한다. 잠깐이라도 햇볕이 비치는 곳이라야 된다.


뱀부 즉 대나무 과에 속하는 헷지에서 빨강 꽃이 핀다. 이파리들이 대나무를 닮은 것도 아닌 것이 닮지 않은 것도 아닌 것이긴 하지만, 뿌리로 번식하는 것을 보면 내다무 과가 맞을 법도 하다. 새잎도 묵은 잎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은 이 나무가 이 계절이 되면 빨강 또는 하얀색의 꽃이 핀다. 집의 울타리로 드라이브 웨이를 죽 따라서 심었다.  

수선화가 시작한다.

새봄에 맨 처음 꽃이 피는 꽃은 노란색이다. 일조량이 부족하다는 사정이 노란색을 만든다고 한다.  북섬으로 이사간 교민이 그리워 함에도 피울 수 없는 화초, 남섬의 추운 겨울의 선물이다.

데이지를 좋아한다. 꽃이라야 손톱정도 크기의 소박하고 자잘한 이 꽃도 이 계절에만 누리는 호사이다. 쑥부쟁이 라고, 들국화 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설명을 들었어도 그 차이를 모르겠다.

히야신스.... 한국에서는 수경재배로 키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기서는 집집마다 좀 흔한 편이다. 이사 와서 한송이가 피었는데 그 꽃이 지기를 기다렸다가 옮겨 심었다. 5년이 지났더니 그새 여럿이 되었다.

튤립 하면 1974년 서면 로터리를 가득 채웠던 이미지가 떠오른다. 노랑 빨강 보라색으로 만발했는데 택시에서 손에 잡힐 듯 했던 풍경이었다. 한때 네덜란드에서는 튤립 파동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 하는데.... 꽃잎이 하루 이틀밖에 안 가서 서운하다.



어제는 올해 봄 처음으로 꽃들을 거뒀다. 키가 작은 히야신스와 데이지는 좋아하는 크리스털 병에 담았다. 꽃의 화려함도 그렇지만, 아침에 나왔더니 히야신스의 향이 가득해서 와... 하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봄이 왔다. 꽃을 담을 때는 페이스 톡을 할 생각이었는데 정작 못했다. 코로나 창궐로 머리가 봉두난발이고 이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기 어렵다는 큰아들의 사정에게 원판만 보겠다고 하며 웃었다. 꽃 사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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