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새롭게 살기로 했냐고?
부엌에서 하는 일이란 게, 필요한 것이거나 있어야 할 것, 갖고 싶은 것 등등을 사다가 쟁여둔다, 에서 시작한다. 그걸 찾아서, 꺼내 쓰고, 씻어서 다시 넣는 그 일이 의식주의 가운데 있는"식"이다. 그 변함없는 반복이 어마무시하고 징글징글함에도 피할 길은 없다.
미국 남부의 밥술 좀 뜨는 집 얘기이다. 하이엔드 디너웨어 세트들은 유리장에 진열용이고, 일상은 일회용 식기를 쓴다, 한다. 그 짓을 왜 할까 하면서도 편하게만 사는 무신경이 부럽곤 하다.
우리 집 부엌의 속칭 수납공간이란 데는 22년 이민살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없는 게 없는 게 아니다. 너무 많다. 이러다가는 플라스틱 아이스크림 통 100개를 두고 사셨다는 어느 할머니 꼴이 될려나 모르겠다.
아주 버려두지는 않았음에도 저것들 다 어짜노, 이사할 일도 없을낀데 어짜믄 좋노. 이러다가 갑자기 드러눕거나 몬 일어나는 일이 생기면, 자식들 특히 며느리에게 챙피하고 부끄럽을낀데...
생각이 꼬리를 물어도 엄두를 못 내고 살다가 근래에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두 방의 붙박이 옷장 둘과 컵오더 한 개의 공간을 샤워룸과 토일렛으로 바꾸는 일이었다. 생각은 오래 했는데 시작은 덜컥 이었다.
쓰던 방 둘의 짐을 두 방으로 옮겼더니 졸지에 이사한 방 둘과 거실 두 개가 난민촌 모양이 되었다.
높이 2.3미터, 가로세로 2와 3.5 미터, 너비 7평방미터에 쟁여져 있던 옷, 옷, 옷. 입을 건 없어도 버릴 건 더 없고, 책이야 뭐야 구석구석 살림살이가 끝이 없었다.
옷장과 컵오더에 있던 생활집기들이 들어갈 곳이 어디냐, 복도의 또 다른 식료품 컵오더였다. 그렇다면 그 식료품은 어디로 가냐고? 당근, 부엌이다. 그리해서 부엌으로 돌진했다. 이틀간.
먼저 품목별로 나눴다. 라면, 국수와 파스타, 커피, 티 종류에는 깔때기, 티폿 식으로. 제빵기에는 그 재료들을, 베이킹 도구와 재료들, 곡류와 건채 등속, 저장 식품과 양념류... . 곡류와 가루류는 봉지에 담아서 부피를 줄이고, 오랜 애증의 밀폐용기, 아끼다가 철 지난 무겁고 불편한 그릇들, 냄비 한 세트... 죄다 도네이션 했다.
재활용 가게 직원이 그런다. 인생 바꾸기로 했냐고.
말하자면 그렇다고 같이 왕창 웃았다.
기분이 어땠냐면, 아깝지도 서운하지도, 그걸 왜 샀냐는 일말의 후회도 안 했다. 몇몇, 어느 순간에 내게 선물했던 '소확행'의 낭비도 꼭 팔요했을거다.
22년 전, 두 아들과 메고 왔던 배낭 셋으로 시작했던 이민살이, 99.99 퍼센트가 부족했던 그 결핍의 트라우 마였다고나 할까.
나는 내가 너무 대견해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다. 몸으로 치면 운동으로 태운 체지방, 내장지방이었다. 맘속으로는 내손으로 내 머리를 여러 번 쓰다듬어 주었다.
세탁실에서 한나절 보냈더니 또 상당한 공간이 생겼다. 적당히 했음에도 큰 봉지 두 개가 나왔다. 일을 마치고 제각기 원위치를 할 때면 또 얼마나 더 나올려나 모르겠다. 이제까지가 오픈게임이라면 본게임이 기다리고 있는데 꼭 이처럼만 할 생각이다.
남편에게 큰소리쳤다.
지금 당장은 좀 헷갈릴 테지만 3주만 지나 보라고. 부엌에서 뭐라도 필요하면 10초면 된다고.
며칠이 지나서 말인데, 아직도 더 정리할 것이 튀어나오지만 군데군데 헐렁하기조차 한 부엌에서 혼자서 흐뭇하다.
버린 것들이 다시 필요할 때도 있고 없어서 불편도 있다. 그새 편리하게 배치가 바뀌기도 했고, 두어 개 보탠 것도 있지만 딱, 여기까지. 쟁여놓고 고민하는 시절과는 이별했다.
덤이라면, 뭐 하나 찾겠다고 서랍 다 열고, 다 헤집지 않아도 된다.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안 쫄린다. 이 정도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