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죄송한데 자리 좀 바꿔주시겠어요?"
난데없이 옆자리 사람이 내 팔을 건드린다. 자리를 바꿔 달라며. 이 자리에 앉은 지 40분. 10분 전쯤 도착한 이분은 나에게 자리를 바꿔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고요하디고요한 도서관 열람실의 정적을 깨면서.
뭐지, 왜지,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 아주 짧은 사이에 머릿속엔 폭풍이 치고, 흔들리는 동공을 애써 붙잡는다. 이건 또 무슨 신기한 상황이지, 생각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붙잡으며 입을 연다.
"자리를요? 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숨을 작게 들이쉬는 소리가 들린다. 상대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내 동공도 저렇게 흔들렸을까,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침묵을 견딘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눈동자가 보인다. 눈동자는 왼쪽으로, 왼쪽으로 향한다. 아, 왼쪽 사람이 문제구나.
슬쩍 본 그 자리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저 사람도 나처럼 곱슬인 건가 싶게 저들끼리 사이가 좋아 보이는 머리카락을 가진, 반팔을 입고 노트북을 하는 사람.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나는 초록색 후드집업이 눈에 띈다. 한때 유행했던 고릴라 인형이 달린, 형태가 잡히지 않아 내가 참 싫어했던 백팩이 의자에 걸려있다. 그냥 평범하게 도서관에서 노트북 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 걸까. 노트북 뒤편에 놓여있는 이케아 진공 팩에 담긴 칫솔 치약에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아니면 두루마리 휴지가?
여전히 옆 자리 사람(이하 '옆')은 말을 잇지 못한다. 대신 무언가를 찾는 듯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다.
내 노트북으로 다시 시선을 돌리기엔 이 사람을 무시하는 것만 같고, 말을 걸기에는 도서관이 지나치게 고요하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쎄. 옆옆 사람 관찰하기 정도.
어디선가 작게 가래를 끌어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까부터 쉴 새 없이 하품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와 재채기를 동시에 하는 묘기를 보여주시던 저 베레모 분인 걸까. 통화도 한참 하시더니 이제는 가래를 뱉으려는 걸까. 편견 없는 인간이 되고 싶은데, 나는 그른 게 분명하다.
퉤 — 작게 무언가를 뱉는 소리가 들린다. 재빨리 눈을 그 베레모 분에게 돌린다. 놀랍게도 저 사람이 아니다.
다시 톡톡, 옆 사람이 내 팔을 건드린다.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내게 보여준다.
'옆 사람이 자꾸 휴지에 가래를 뱉어요.'
이번에는 내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이건 숨길 수도 없다. 옆 사람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옆옆 사람(이하 '옆옆')을 슬쩍 보니, 사실임이 분명하다. 다시 보니 노트북 옆에 휴지가 잔뜩 쌓여있다.
어떻게 하지? 이런 걸 민원으로 넣을 수 있나? 사서 선생님들께 말하면 처리가 될까? 하지만 그냥 사서분들을 곤란하게 만들 뿐, 뭐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생각이 몰아치는 사이 옆 분이 다시 휴대폰에 무언가를 입력한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자리 좀 바꿔주시겠어요? 저는 이어폰도 없어서요 ㅠㅠ'
옆옆도 분명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옆도 괜찮지만은 않다. 그래서 내가 무얼 하길 바라는가?
'죄송한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서님께 말씀드려 보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시는 게 최선일 것 같아요'
앞에 둔 종이에 대충 휘갈겨 써 옆에게 전달한다. 눈꼬리를 한껏 아래로 내리고 나를 한참 바라본다.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내가 죄송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내가 죄송할 건 없는걸. 애써 무시하며 시선을 다시 노트북으로 돌린다.
킁- 크응- 이번에는 코를 푸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나 옆옆이다. 아마도 오늘 저 두루마리 휴지 한 롤을 다 쓰고 귀가할 예정이신가 보다. 옆은 분노의 타이핑을 하고 있다. 노트북이라 소리가 크지는 않지만, 얼핏 본 화면에 카톡이 띄워져 있다. 아마도 옆옆의 욕과 내 욕을 함께 하고 있지 않을까.
영원 같던 그 찰나에 도서관 5층의 열람실이 꽤 북적이기 시작한다.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 열람실을 산책하는 듯 짝지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목소리를 줄일 생각도 없이 사서에게 이것저것 질문하는 분(빨간 넥타이가 인상적이다), 날이 더운 탓인지 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에어컨, 숨바꼭질을 시작하는 아이.
이상하고, 이상하고, 이상한 일 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분명 있다고 했는데. 어느 집단에든 일정한 수의 또라이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그 법칙.
하지만 또라이의 기준이 과연 무엇일까?
'생각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 어쩌면 저 모든 인간들이 보편적이고, 내가 이 구역의 또라이가 아닐까.
누군가가 내 귀에 속삭인다.
"어때? 아름다워 보이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