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쿠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l Jan 27. 2021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아른힐 레우뱅

조현병을 앓았던 그녀는 이제 심리학자가 되었다. 열네다섯 살에 상태가 나빠졌고 열일곱 살 때 입원을 하였으며 스물여섯에 건강을 되찾은 진짜배기 조현병 환자의 이야기이다. 조현병은 그녀가 말한 대로 당뇨병이나 에이즈처럼 사실상 완치가 어려운 정신병이라고 알려져있다. 그러기에 그녀의 경험은 특별하다. 자신이 수년간 겪었던 병을 학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만큼 분명한 목적이 있을까? 책을 다 읽고 제목을 다시 보니 이해가 갔다. 그녀는 높은 빈도로 죽으려는 시도를 하였고, 드물게는 정말로 살고 싶어 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있던 순간을 기억하는 조현병 환자라니...!


그녀의 조현병은 환각과 환청으로 시작되었다. 선장의 환청은 아른힐을 극한의 순간으로 몰아붙였고, 환각은 늑대라는 환상을 만들어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공부도 잘했고 사회생활에도 문제가 없었던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 속으로 점점 사라지면서 '나'를 잃게 된다. 이어지는 자해와 파괴적인 행위는 그렇게 수년간 계속되었고, 자신을 표현할 단어를 점점 잃어가면서 그녀는 물속에 잠기게 된다. 나는 존재했지만 나는 나의 존재를 잃었다는 그녀는 벽지를 떼어먹는 절망적인 순간까지 이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떠올랐다. 길지만 멋진 곡선을 그리며 다시 가족과 사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긴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발판으로 삼아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어엿한 임상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녀는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일반적인 지침을 거부하였다. 조현병은 완치가 불가하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깼다. 그녀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국가

저자는 북유럽 중에서도 최고의 복지 국가인 노르웨이 사람이다. 의료 시스템은 말해 뭣하리. 아른힐 자신도 청소년 심리를 담당하는 선생님과 처음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 털어놓았다. 체계적인 치료 시스템 하에서 그녀는 종종 외출도 하고 친구도 만나면서 사회와의 끈을 놓지 않는다. 완치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도 할 수 있었다. 국가의 지원과 의료 혜택, 열린 사고가 그녀의 완치를 도왔다고 생각한다.


가족

깰 수 있는 모든 것을 깨고 다녔지만 아른힐의 어머니는 딸의 단 하루 외출을 위해 가장 아끼는 도자기잔을 꺼내어 딸에게 차를 대접한다. 딸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고, 가족의 따뜻한 지원 덕에 아른힐 또한 간호사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불신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심리학자가 쓴 정신병의 이야기이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달고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충분한 의미가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등의 병명은 낯설지 않고 번아웃 증후군은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때문에 나의 마음을 보살피고 다독거리는 시간이 필요한데, 눈에 보이지 않으니 일단은 살고 본다. 그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단호하게 나를 챙기고 힘들어하는 주변인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