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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욕해놓고 아이리쉬펍을 고른 그 녀석

영국인 동료는 흥미롭다.

by Mel

멜입니다.


요즘 들어 시간이 물 마시듯 꿀꺽 지나가는 느낌이에요. 그 일련의 시간들이 느껴지지 않고 주말이 와야 그제야 일주일이 흘렀다는 것이 느껴지는 꿀꺽 지나가는 그런 일상.


전 편에서 말했던 영국인 동료는 다시금 평정심을 찾고 예전의 까불이로 돌아왔습니다. 올해 처음 하는 팀 회식에서도 자연스럽게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지요. 열명이 넘는 팀원들이다 보니 공통주제를 찾는 것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분주하게 주제를 꺼낸 그 덕에 어렵지 않게 대화의 주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영국이 얼마나 별로인지’에 대해서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는 가족들을 볼 생각에 너무 설레지만 영국은 사람이 한 달 이상 살 곳이 못된다고 했어요. 이어서 영국에서 공부를 했던 동료의 증언이 이어졌고, 더블린과 아일랜드 촌구석에서 일을 했던 다른 동료들도 거들었어요. 화장실을 ‘루’라고 부르는 것은 알았지만 지하철을 ‘튜브’라고 부르는 건 처음 알았네요.


한 시간 넘는 토론 끝에 그들이 낸 결론은


‘영국을 아예 안 떠난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떠난 사람은 돌아갈 수 없다’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날씨가 그렇고, 그 날씨마저 겸손하게 만드는 물가도 한몫을 톡톡히 해냈죠. 런던 하면 대영박물관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 저이지만 동료들의 증언은 너무나도 생생했고, 자국을 신나게 까대는 그도 제법 볼만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어요. 만약 외국인들이 한국을 이렇게 까댄다면 나는 어땠을까?


내 가족, 내 나라는 나만 깔 수 있는데 감히 네놈들이 내 나라를 모욕해? 부들부들.


무슨 차이일까요? 저에게 한국은 제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서일까요? 아니면 그처럼 쿨하지 못한 것일까요? 저만의 상념에 빠져있을 때 그가 2차를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맥주 한 잔만 더 하고 하자고.


그리고 그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아이리쉬바였어요. 두 시간 내내 영국의 단점을 말했지만 결국 그리워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요? 미운 정도 정이라고 애증이었을까요?


시가 향이 지독했던 그 바에서 영국에서 건너왔다는 보드카를 마시면서 소리 높여 강한 엑센트로 떠들어대는 그를 보며 참으로 흥미로운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서 한국이 보고 싶어 졌어요.


그냥 그런 날이었습니다.

치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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