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덟, 단추 [박사 1년차, 내 세계관이 와르르]

앞만 보고 달리던 내 바이올린 고속열차가 멈추기 시작하다.

by 이 길의 끝에서

28-3 단추와 시스템


10대 때의 내 목표는 단 한 가지,

내가 학교생활을 통해 바라고 노력한 것들이 "좋은 대학교"로 보상받는 것이었다.


내가 심혈을 기울인 내 인생의 첫 프로젝트가 좋은 학교라는 결과로 이어져

그것이 나를 좋은 인생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대학시험 결과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실망스러웠을 때, 나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는 마음으로 더 시험을 치렀다. 쓴 맛, 매운맛의 날들을 지내고 피바디에 들어갔을 때에야, 마침내 나는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웠단 느낌이 들었다.


첫 단추를 끼우자마자, 아니 어쩌면 그 전 부터 나는 두 번째 단추를 끼울 궁리를 시작했다.

나는 그 두 번째 단추, 꿈 너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시 20대를 바쳤다.


두 번째 단추는 어느 학교를 다닌다거나, 어느 콩쿠르를 상 받는다거나, 어디의 교수가 되는 등 특정된 것은 아니었고, '아 나도 저만큼 연주하면 좋겠다' 싶었던 연주자들만큼 연주하고 싶은 것이었다.


학부, 석사를 거쳐 박사 1년 차가 되었을 때, 내 연주를 계산해 보니 내가 원하던 연주자들만큼의 실력을 가질 수 없어 보였다. 박사가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디그리인데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늦었고, 시간이 없고, 재능도 부족했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설렘과 희망을 안고 달려오던 내 평생의 마라톤이

어디쯤에서 멈출지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박사 첫 학기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이 판타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고,

유명한 작곡가들과 그와 관련된 내용을 공부할수록 지금의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200년 전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레벨업만을 위해 달리던 나의 꿈너머의 꿈에 닥친 위기였다.


도착 시의 내 최종레벨이 예견되는 길,

게다가 그 레벨이 내가 보기에 턱없이 부족한 길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했다.


실패인가, 길을 바꿀까, 이러려고 유학 온 것은 아닌데,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이제까지 공부에 대한 희생과 대가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인가,

기도하며 선택한 것들은 결국 인간적인 내 판단들 뿐이었나.


여러 질문들로 가득한 날들을 보냈다.


그동안 결혼을 했고 쉬었고 첫 아이가 태어났다. 바이올린도 결국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

다른 일들로 바삐 지냈다. 그 질문들을 머릿속 한 구석에 밀어 두고 지냈지만

파도처럼 꾸준히, 정기적으로 떠올랐다.


어쨌든 꾸역꾸역 코스워크를 마쳐가며 여러 학교들에 교수 지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이 길을 더 갈 자신이 없었다.


지원하던 것을 멈추고 내 이력서를 바라보는데, 그제야 빼곡히 적힌 내 역사들이 보였다.

친구들과 양로원, 여성보호센터, 교회, 길거리에서 했던 실내악 연주들,

지역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세브란스 홀에서 섰던 기억,

재밌게 들었던 많은 수업들, 교수님들과의 대화,

영국 길드홀 친구들과 함께했던 볼티모어 가난한 초등학생들을 위한 종합음악프로그램,

처음으로 예술고등학교에서 가르친 것,

언니와 한국에서 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


그 외에 적지 못한 수많은 연습실에서의 밤,

레슨이 끝나고 잊지 않으려고 바닥에 앉아 연필로 적은 메모들,

많은 리허설들 리사이틀들, 챔버와 오케 연주들..


우스갯소리로 유학을 떠나는 내게 친구가, "이제 ㅇㅇ 필하모닉 들어가는 거야?" 했었는데,

친구의 말대로 나는 ㅇㅇ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지 못했고,

내 연주는 여전히 부족하고,

미국 시골에서 애를 키우며 근근이 박사공부를 하고 있고,

여전히 한 방울씩 느리게 늘어가는 바이올린과 씨름하고 있다.


얼마나 excellent 한 연주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보면 어느 기준으로 내 연주는 평범하다.

하지만 내가 처음 미국땅을 밟았을 때 가지고 있었던 맨몸 플레이와 지금은 참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의 내 연주에는 수많은 결정, 배움, 생각, 깨달음이, 그리고 내 세월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내 연주의 높이는 조금만 높아졌을지 몰라도 넓어졌고, 깊어졌다.

내가 자신이 없고 내가 가진 것들이 초라하게 보였던 건,

나의 결과물을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세운 세로줄자에 대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 배움과 성취를 시스템이 이미 정해놓은 학교의 레벨, 능력의 레벨, 삶의 레벨에서 성적표를 받듯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은 내가 느끼지 못했을 만큼 자연스럽고 오래된 것이었다.


이제 서른을 앞두고, 거의 평생을 몸담았던 학교라는 시스템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시스템은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었고 그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성장하게 했지만,

이제는 더이상 시스템이 나에게 찍는 성적에 주눅이 들거나 나의 능력을 재단하는 푯대로 삼지 않아야겠다. 어차피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것도 사람이 아닌가.


첫 번째 단추를 끼울 때의 나는 사회의 인정이 필요한 연약하고 어린 사람이었지만

두 번째 단추를 끼우려는 나는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철선에서 과감히 내려

용감하게 나룻배를 타고 항해해보려 한다.


두렵지만 exciting 하다.

이전 07화스물 여섯, 돌파구 [가난해도 빛나고 있던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