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깨어나지 못한 알과 그 자리에 핀 생명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비로소 자유로워진 시간

by 이 길의 끝에서

유학을 온지 7년째 되던 해, 마치 안식년이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

처음으로 휴식할수있는 기회가 결혼과 함께 찾아왔다.


유학생활로부터 오는 압박들 없이 온전히 심신을 쉬게하는 날들이었다.

그동안 밤낮으로 뭔가에 옭아매여, 스스로를 몰아붙여온 탓에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지금의 이 쉼이 6년의 지나간 날들에 대한 수고를 토닥여주는 느낌이다.


또, 입덧부터 막달까지의 임신, 출산 그리고 아기로 인해 찾아왔던 또 찾아올 많은 변화와 스트레스들이

아기와 마주하는 순간마다, 보상받고 치유되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난 후 비로소 나는 내게 불필요했던 가치들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삶의 목적이 단순해져 그 어느때보다 말짱한 정신을 가졌다.




요즘은 날이 따뜻하고 아이도 밖을 너무너무 좋아하니 뒷뜰에서 햇빛샤워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얼었던 잔디도 다시 자라나고, 나무들에도 여린잎과 꽃이 피어나고, 텃밭에 엄마가 심은 씨앗들도 옹기종기 싹이 텄다. 지금 우리집 뒷뜰엔 생명의 기운이 가득하다.


한 달전쯤 산비둘기 한 쌍이 창고지붕으로 날아와서 한참을 서성였다.

남편은 그게 꼭 집을 보러다니던 우리모습 같다고 했다.


며칠 후 그 새들이 다시 날아와 열심히 나뭇가지를 나르더니 둥지를 짓고 예쁜 알을 두개 낳았다.

14-20일이면 새끼가 태어난다고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아기새가 태어났나?' 하며 멀리서 둥지를 확인하는게 그동안 우리들의 하루를 여는 루틴이었다.


한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결국

날아간 어미가 하루 이틀 일주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생명이 차오르고 또 저물어가는 뒷뜰처럼, 나도 생명의 차오름과 저물어감을 경험하고 있는 날들이다.

매일이 배움이고 성장인 내 아기는 그야말로 생명덩어리다. 그 아기를 날마다 새롭게 충전되는 신비한 사랑으로 키우고 있으니 내 인생 중 이토록 생명과 생기가 가득했던 날들이 있었던가 싶다.


약 8년의 시간동안 달려온 나의 음대공부가 드디어 박사 코스워크 수업을 단 하루 남겨놓고 끝이났다.

유학생활동안 어려울때마다 수도 없이 그렸던 '이길의 끝'이 드디어 보인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보는 '이 길의 끝'은 내가 그리고 바랬던 꿈과는 다른 모습이다. 늘 넘쳤던 (어쩌면 과했던) 자아실현에 대한 욕망의 빈자리에는 20대에 가졌던 질문에 대한 답대신 더 많은 질문들이 남아있다.


그저 눈앞의 사다리를 오르기만 했던건 내가 혹시 어디로 가는지 모른채로 올랐던건 아닌지, 내가 욕심냈던 삶과 나와 추구하는 삶이 달랐던건 아닌지, 바이올린을 통해 내가 이루고자 했던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그 이룸이 나에게 어떤걸 주는지, 내가 그것을 진짜로 원하는지, 진정으로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자아실현, 자기발전은 사실은 무엇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는지.


서른이 되면 20대에 가졌던 질문들의 답에 가까워질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새로운 질문들 앞에 자신없이 서있다. 산비둘기 알이 어미가 품는 정해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생명을 터뜨려야 했듯, 내가 최선을 다해 품은 소중한 8년의 유학생활이 무언가를 토해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 못한 내 모습이 마치 깨어나지 못한 알 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나는 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에도 때로는 정적과 불확실함, detour이 있다는 것을. 내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플랜A를 이루지 못하더라도 (또는 플랜 A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내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플랜B도 주실 수 있을 만큼, 크고 넓으신 분이라는 것을.


이 모든 시간과 걸음들이 나와 내 주위 사람들 모두를 함께 세우는 데 사용 수 될 수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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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오늘 내 기도에 즉답을 주시지 않더라도,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는

정직한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의 크고 넓으심 아래에서

이 생명을 누리며 지금을 충실히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