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둘, 자아성취. 그 다음은?

직선의 끝에서 곡선을 상상함

by 이 길의 끝에서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하루종일 외출을 했다.

운전하는 동안 동요대신 슈만퀸텟을 듣고, 천천히 장도보고,

아이의 끼니를 고민하는 대신

유학시절 항상 먹었던 추억의 서브웨이 베지패티를 사먹었다.


클리블랜드에서의 삶이 생각나는 하루였다.

춥고 가난했어도 공부만큼은 즐거웠던 곳.


아이 없는 하루가 느리고 조용하지만 바랐던 만큼 개운하진 않다.

남편이 보내주는 동영상과 사진을 보며 아이 생각이 꼬리처럼 따라다닌다.


만약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로 돌아가라면,


나는 피바디도 좋았고, cim도 좋았지만,

망설임없이 내 아기를 처음부터 다시 키우기를 선택할 것같다.


배움의 즐거움이 내 인생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으나,

아이와 함께한 지난 31개월이 그것들 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내 눈에 담아온 표정들, 예쁜 얼굴들 꼬옥 다시 한번 보고싶다.

내 마음 저 끝까지 빈틈없이 가득채우는 햇살같았다.


나의 10대와 20대는 온전히 자아실현에 바쳐진 날들이었다.

유학온 후, 내가 가보고싶은 학교들, 오케스트라 오디션 안해본데 없이 다 쳐보고,

저명한 분들께 레슨도 받아보고, 오케 챔버 알바 연습 레슨에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줄모르게

바쁘게 연주하고, 밤새워 페이퍼쓰며 20대를 보내고 나니 나는 조금도 여한이 없다.


그렇게 자아성취의 끝을 보고나니 사실은 좀 허무했다.


그때쯤 내게 찾아온 엄마로써의 시간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행복이자 인생의 의미였다.


힘들기도 했지만 다시 하라해도 기쁘게 할 수 있을만큼

단연코 내 인생에서 제일 재밌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직선의 삶 곡선의 삶


나만의 길을 걷는 것. 꽃, 동물, 사람 어느 하나 똑 같은 모양이 없듯

각자의 고유함으로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게 곡선의 삶이지 싶다.


각자의 곡선이 모여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큰 그림.


반대로 직선의 삶은,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경쟁구도, 모두가 더 좋은 곳이라고 가리키는 곳에 줄을 서는 것이다. 태어나 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눈앞에 주어져있는 사다리를 성실히도 올라가는 삶이다.


각각의 길이 잃고 얻는 것이 있다.


10대 20대의 나는 직선의 삶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

더 뛰어나 질 것, 더 높이 올라갈 것, 경쟁에서 이길 것. 내가 추구하던 직선의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학위라고 생각했던, 박사과정 중에 임신과 육아라는 이름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는 쉼이 주어진지 3년이 흘렀다.


사력을 다해 달려가면서도 사실 나는 직선의 삶을 추구하는데 지쳐있었다. 내 눈앞에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높이 오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더 이상 귀 기울이고싶지 않았다. 그 삶의 끝이 가리키는 곳이 내게 아무런 매력이 없어졌을 때쯤, 이재철 목사님의 어느 인터뷰를 읽고 곡선의 삶에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내게 직선의 삶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로 직선의 삶을 좇았지만 때때로 나만의 곡선을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직업이나 의식주 같은 특정한 부분에서 지나치게 직선의 삶을 좇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완전히 직선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정복하고 영향력있는 삶을 좇을 것이냐, 아니면 오래 걸리고 손에 쥔게 없을지라도 내 소박함과 고유함으로 내 주변사람에게 평화를 끼치는 삶을 좇을 것이냐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두 개의 삶이 그렇게 감자자르듯 두가지로 갈라지지는 않겠지만.)


살면서 내가 경쟁자라고 여겼던 많은 사람들이 지나보니 경쟁자가 아니었고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다.


나와 다른 환경과 위치에서 그들의 정원을 정성껏 최선을 다해 가꾸는 중일 뿐이었다.

그걸 깨달아 가면서도 나의 삶에 이미 깊게 스며들어 있는 직선적인 삶에 대한 동경이나 기준 같은 것이 내 생각보다 지배적임을 발견한다. 아이를 키울때는 어떤가, 너만의 길을 걸으라고 단단하고 불안해 하지 않는 따스함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내가 그 길을 먼저 걸어봐야 하겠지?


아이와 함께 엄마도 함께 자란다. 엄마 사람에게도 자랄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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