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둘, 남의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시스템이 설계한 좌표 위에서 길을 잃었던 시간

by 이 길의 끝에서

코로나를 뚫고 올림픽의 열기가 이곳 미국 시골에도 전해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생각했던 “사다리”라는 토픽에 대해 써보려 한다.


좋은 대학 가는 것이 내가 10대를 바쳐 끼우고 싶은 첫번째 단추였다면 내 유학공부를 바쳐 제자리에 꼭 끼우고 싶었던 두번째 단추는 박사를 따고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마지막 디그리인만큼 내가 가진 모든 주사위를 던지고 결과를 기다렸다. 전액 장학금 오퍼를 받은 일리노이에서 박사를 시작하게 됐는데 '드디어 마지막 디그리구나' 하는 안도감, 이제 더 목표할 곳이 없다는 허탈함, 더 잘하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길었던 내 유학생활에 대한 지침으로 마음이 복잡했었다.


그러던 2016년 어느 날, 나는 한 music theory 수업에 앉아있었고 50대의 어느 교수님이 브람스와 슈만의 음악을 분석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부분에서 이런 화성을 넣을 수가 있죠?” 라고 연신 감탄하며 말하던 교수님. 그의 열정적이고 확신 가득한 눈빛과 말투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문득, “나는 아직 20대고, 이제 막 박사를 시작했는데, 나는 어쩜 저렇게 저분보다 더 지쳐 있을까? 내게도 저런 학생들과 나누고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나? 내게도 200년 전의 작곡가들이 거기에 그런 화성을 쓴 점이 어떤 의미나 기쁨이 되나? 이 일을 평생 해야할 이유가 있나?” 하는, 어쩌면 진작부터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할 질문들이 내 머릿속으로 쏟아졌다.


이 질문들은 남은 박사과정 내내 나를 좇아다녔다.


그러다 어느날 우연히 지휘자 Marin Alsop의 인터뷰를 읽다가. “Technical Excellence”만을 좇는 음악세계의 방향 대해 꼬집는 부분을 보았고, 거기에서 나는 내가 쉼없이 내달린 이유가 Technical Excellence 였다는 걸 깨달았다.


내게 탁월한 테크닉이 중요했던 이유가 뭘까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자아성취라는 이름으로 내가 가진 능력을 개발하는데 온통 집중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자아성장의 강한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9살에 처음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순간부터 박사에 오기까지 나의 한가지 목표는 오직, 내 눈앞에 있던 사다리를 오르는 것, 레벨 업 하는 것 이었다. 내가 매우 좌절 하게된 포인트는 그 사다리를 오르라는 메시지가 내 속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해있던 한국의 시스템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부여 받은 것이라는 점이었다. 내 주위에 있던 미국친구들 동료들은 왜 박사를 하는지 알고 있는데, 나만 이제서야 그 이유를 찾아 헤메는 것 같았다.


나는 왜 오랜시간 위로 올라가고만 있었나, 하는 고민을 했고,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었다.


내가 자란 한국사회는 조선의 멸망,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정권을 차례로 겪은 그야말로 격동의 근현대사를 지냈다. 시민이 주체가 되어 시민혁명을 일으켜 몇백년간 그 주권을 확립하기 위해 싸운 서양?과 비교하여, 한국은 위로부터의 질서가 시민에 의해 부서진 역사가 너무나도 짧은 사회이다.


그래서 현대한국은 아직도 유교적, 군사적 수직적인 문화에 훨씬 익숙하고,

이전 세대 사람들은 다음 세대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가능 한 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말해왔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경쟁에서 우월해 지는 것이 성공하는 삶이라고 가르쳤다.


나의 어린시절과 젊음을 바친 내 자아성취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한국의 시스템의 가르침대로 따른 결과였고, 나는 내 눈앞에 언제부터, 왜 있었는지도 모를 사다리를 20년간 이상하리만치 열심히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자아성취라는 이름으로 얻고 싶었던 건 단지 시스템이 디자인한 사다리 구조에서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함 이었다는 것이 내게는 적지않은 충격이었다. 마치 내가 원하지도 않은 싸움을 너무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온라인 게임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2019년 박사 코스워크를 마치며 이 사다리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나는 사다리를 오르던 관성으로 뭘 해야할지 몰랐다.

그저 내안에 샘물처럼 솟아나는 사랑에 놀라워하며 아기만 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직선의 삶 곡선의 삶, 천재, 사다리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내 삶의 방향을 지배하고 있던 내 인생 전반기의 영향들에 대해 정리해보고 앞으로의 목표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를 키우며, 그리고 사다리, 천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내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새로 정한 목표는 훨씬 가볍고 투명해졌다. 가족, 이웃, 교회. 개인에게 미치는 시스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절감하며 법조계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다. 내 주위에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민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임신, 출산, 육아 하며 애들 재우는 짬짬이 공부해서 로스쿨 시험을 봤다. 가능한 한 높이 올라가 대단한 일을 해내는 법조인이 아니라 가족, 이웃, 교회에게 도움이 되는 법조인으로 목표를 잡으니 마음도 가볍고 목표달성도 수월했다. 그리고 이번 7월 나는 다섯개의 합격레터를 받았다.


누군가가 이 방향을 가리켜서가 아니라,

누군가 이 길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 선택으로 이루어 낸 부분이라 뿌듯하고 기뻤다.


하지만 이제 4개월밖에 되지 않은 우리 둘째를 위해 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이기 때문에 지금은 아기와 더 시간을 보내는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여유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건 우리 네식구를 훌륭하게? 건사하고 있는 남편 덕분이다. 당장 먹고사는게 바빴다면 무슨 일이든 했어야 했겠지..


일단 둘째를 키워놓고 다시 또 내 주위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기위해 움직여 보려 한다. 시스템이 디자인한 보상구조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 보상구조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면서 스스로만의 이유와 방향을 찾는 다면 목표를 이루고 고유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꼭 찾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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