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둘, 내가 알던 천재는 틀렸다

음대 유학, 그 이후 좌표를 수정하다

by 이 길의 끝에서

앞 글에 이어서,

https://brunch.co.kr/@melodyandscrubs/9


32-3 천재 (2)


10년 전 만우절에 잊지못할 합격레터를 받아 미국으로 와서

지금은 삼십대, 애 둘 엄마가 되어 미국 중부 시골마을에 살고 있다.


유학기간중 만났던 친구들 중 몇몇은 음악이 아닌 다른 직업을 찾아 갔고, 얼마는 여전히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고, 또 다른 몇몇은 자기의 나라에 돌아가서 티칭이든 연주든 각자의 역할들을 하고 있다.


그 때 그 친구가 동네에서 천재였는지

그 나라에서 천재였는지

학교에서 누가 더 잘했었는지는

10년이 지난 지금 별로 의미가 없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길을 걸을뿐..


남들이 절대적 기준의 세로적 천재성에 집중할 때

지속적으로 자기의 색깔을 선명해지게 개발하고 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은 내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개인적이고 확실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는 내게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할 시간이 없어보인다.


자신이 하는 일이 재미있고 의미가 있어 이미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자기 안에 충분히 있는 것이다.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는 남이 결정해 주는 문제이기 때문에 남들의 평가와 그것을 확인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반면, 이유와 방향이 내면에서 확실한 친구들은 학부 때부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과 관심사가 자신만의 유니크한 길을 만들고 박사, 세월이 흐르고 켜켜이 쌓이면서 더 분명해진 자기 색깔로 우리사회에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질 만한 예술가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을 본다.


동네천재는 도시로 나가면 천재가 아닐 수도 있고, 도시에서 천재라 불리우는 사람이 해외로 나가면 천재가 아닐수 있다. 또 국제무대에 선 사람도 그 보다 이 전 세대 이 후 세대 등 더 천재인 사람을 살면서 끝도 없이 만날 것이다.


나의 재능은 내가 어디있느냐에 따라, 누구와 비교하고 있는지에 따라, 좀 더해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스치는 햇빛조각만큼 작게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만난 천재들은 내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꿔주었다.


부단히 노력하여 뛰어나질 것, 더 큰 능력을 갖고 그것을 녹슬지 않게 평생 개발하고 물려줄 것이 예전 나의 삶의 목표였다면 지금은 그것이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제 내 삶의 방향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몸이 건강하고

사랑을 주고받으며 감사로 가득하게 사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그렇게 생각만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순간순간이 나와 가족, 이웃을 사랑함으로,

그 인생들을 참으로 살 맛나게 하는 것 말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사람이 만든 구조에서, 사람이 주는 보상을 기대하고, 더 빨리, 멀리 성취하고 많이 획득하는 삶이 매력이 없다. 그 길의 끝 또한 여전히 아프고 연약한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들 또한 답을 찾을 수 없어 서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엄마로 사는 시간이 학교나 사회가 주는 그 성취나 보상보다 훨씬 값지고 인생의 답에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아이들을 바이올린을 언제부터 시킬 거냐고. 엄마의 유전자를 받으면 얼마나 남들보다 빠르겠냐고. 아이가 좋아한다면 기쁘게 악기를 가르쳐 주겠지만 소리에 예민한 우리 아이는 바이올린 소리가 나면 시끄럽다고 옷장으로 들어가버릴정도로 아직은 관심이 없다.


대신 우리 아이는 하루종일 자동차 생각을 한다.


나는 우리 아이가 자기가 사랑하는 마을에서 자기가 즐기는 자동차를 고쳐주는 일을 하며 진심으로 좋은 아빠, 신실하고 안전한 남편 그리고 나아가 남에게 보탬이 되는 좋은 이웃이 된다면 엄마로써 숙제를 다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이 행복하다.

시골에서 바이올린과 상관없이 남편과 함께 두 아이를 돌보고 내 안에 없던 사랑을 발견하고 주며 사는 것이 불안하지 않다. 내가 공부하고 일을 찾을 이유는 나와 내 주변사람들에게 더욱 살맛나는 순간을 주고 받으며 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내가 잠시 쉬었다가 내딛을 내 다음 발걸음은

그 이유를 더욱 완전하게 이룰 것이므로


이 전 걸음들보다 굳고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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