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바이올린에서 의대로 갈아타는 터미널에서

치매 할머니 다이앤과의 만남

by 이 길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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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평생의 시간과 오만 정이 뭍어

떼어지지 않는 첫사랑 같던 바이올린을 놓는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깔끔하게 환승할 수 없었다.


내가 바이올린이 아니면 뭘 할 수있을까?

새로운 직업을 갖고나서도 또 이런 방황을 하면 어쩌지?

언제든 불안할 때면 얼른 손이라도 올려 놓을 수 있게,

손 닿는 곳에 바이올린을 두었다.



그렇게 하던 연주와 레슨을 조금씩 놓아간지 3년째.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있는 연주활동은 외로운 사람들의 장례식이나 호스피스에서 하는 연주다.


한 달에 한 번정도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식사자리에 가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데

사실은, 내가 그곳에 가는 행위 자체 이외에는 크게 의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곳에 계신분들이 대부분 온전한 의식이 없다보니 아쉽게도 의미있는 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러다 어제 오후, 처음으로 치매걸린 할머니 한명을 위해 연주하러갔다.

그 아들에게 개인적으로 받은 부탁이었다.

'젊었을 때 바이올린을 많이 좋아하셨다는 것' 외에는

얼굴도 사연도 모르는 할머니를 찾아갔다.


긴 복도 끝에 "Diana"라고 써있는 방문 앞에서서 긴 호흡을 내쉬었다.

내가 어색하게 문을 열자, 하얀 백발의 예쁜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잠깐 쳐다보셨다.

처음 보는 내가 경계되셨던 것 같다.

그러고는 1초 마다 화제를 바꾸거나 알 수 없는 말을 이어가셨다.


우리가 처음 눈을 맞추고 나를 소개하는 2분이 채 안되는 시간동안 내게,


"누구냐, 왜 왔냐, 여기 의자 밑에 내가 숨겨놓은 걸 꺼내줄수있냐, 내 아들을 아냐, 저기 주차장의 여자들을 조심해라, 언제 온다고 약속했냐, 지금이 몇월이냐, 너가 여기서 할일이 없다, 내가 오늘 바쁘다, 간호사는 언제오냐" 등등 수많은 질문을 던지셨고

내가 그 중 하나를 대답할 때쯤 할머니는 벌써 그 다음 다음 질문을 주셨다.


이내 내가 소개하는 것을 포기하고,

할머니! church music 연주해 드릴까요? 라고 말했더니, 좋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는 Christian이 아니라도 church music을 좋아한다.

추억과 문화가 녹아있어서인 듯 하다.


내가 바이올린을 꺼내고 스피커를 연결하는 동안도

할머니는 내내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뭔가를 찾고, 기다리고, 질문하셨다.


‘음.. 내가 이걸 지금 이렇게 연주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란 생각을 하며 amazing grace 반주를 틀었다.


할머니는 여전히 분주했다. ‘그래도 일단 오늘 준비한 레파토리는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다가 바이올린 파트가 시작됐다.


내가 첫음을 연주하는 순간, 할머니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평온하고, 하나도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가만히 내 소리를 들으셨다. 우리가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몸, 팔, 다리를 가만 두시지않던 분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마치 세상에 나와 그 할머니, 그리고 내 바이올린 소리만 있는 것 같았다.


내 소리에 내 마음과 정성을 담으면,

그 소리가 할머니의 심장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바이올린이 쉬는 시간이면 거짓말처럼 원래의 할머니로 돌아왔다가, 다시 바이올린 파트가 시작되면 할머니는 곧바로 평안하고 아프지 않은 할머니가 되었다.


삶의 모든 순간을 지나 마른 꽃잎처럼 연약해진 할머니와,

변화를 앞둔 두려움 많고 연약한 내가 그 순간 나누던 커넥션.


그것은 내가 연주자로써 한번도 경험한 적 없었던

sacred한 커넥션이었다.


내가 느낀 우리의 연대는

인종도, 나이도, 언어도, 배경도, 사연도 초월한

인간대 인간이 나누는 것이었다.


내가 몇곡을 연주하는 동안 내 소리를 듣고 옆 방 할아버지도 오셨다.

마치 내가 ‘부디 평안하세요! 제가 기쁨을 드리고 싶어요! 라는 마음을 내 활에 실어 보내면,

그들의 얼굴에 그대로 평안함으로 띄워지는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나고 짐을 싸는동안 우리가 나눈 연대는

온데간데 없이 다시 할머니는 분주했다.


그러다 내가 문을 나서자 할머니가 하신말,


“Are you coming back, tonight?”


그럼요 할머니,

제가 오늘밤은 아니지만 다음 달에 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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