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 서른 다섯, 의대를 가야겠다.

"안되면 어때, 해보는게 멋있는 거지"

by 이 길의 끝에서

내가 20년의 바이올린 수련을 통해 닿고자 했던 곳은

그저 내가 오르던 사다리의 높은곳임을 깨달았지만

그 속도와 방향을 바꾸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내가 가장 처음 정한 틀은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다. 내가 좇던 무형의 실력이나 명예가 내 품안의 젖먹이가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에 비해 재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 다시 설정한 방향은 이랬다. 가족, 이웃, 하나님.


그리고는 천천히 내가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2014년 부터 10년간 상대적인 시골에 살았다.

그곳의 한국인 이민자들은 고인 물처럼 새로운 변화의 유입이 적다.

주변 한국인들과 싸웠다가 의지하다가를 반복하며 그들끼리 수십년을 살아간다.

대부분의 나이가 든 이민자들은 떠나간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산다. 더 시골일수록 더 외롭다.


그들은 그들의 자식, 또는 그들 자신과 닮은 나를 사랑해주었다.


내가 애기를 낳았을 때 미역국을 끓여주고, 입덧을 할땐 과일을 갖다주었다.

내 아이들을 진심으로 예뻐해 주고, 우리가 나타나는 것만으로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을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늘 내게 미안해 하며 전화를 거셔서는 병원예약을 도와줄 수 있냐고 수줍게 물어보셨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은 의료도움이었다.

예약을 잡아주고, 환자 정보를 온라인으로 입력해주기 시작하다가,

결국은 여러 수술의 트랜슬레이터로도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간호사, 의사, PA, 레지던트, assistants, techs를 보며

내가 바이올린을 통해 indirect한 위로를 사람들에게 전해줄 때,

누군가는 이런 direct한 도움을 주고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계기로 내 새로운 진로는 막연히 healthcare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내 자신을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내게 외계어와 같은 과학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대학, 대학원 수업을 10년간 들어본 나는, 대학 1학년 수준이 얼마나 포괄적이고 상대적으로 쉬운 수업인지 알기때문에,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을 재우고 조용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공부하는 시간은 오히려 나에게 충전의 시간이 되었다.


아스트레스의 도피처 같았달까.

아이들을 빨리 재우고 다음 내용을 보고 싶었다.


자고있던 좌뇌가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그 때만해도 나는 약사, 치과의사, 치위생사, 간호사, PA 등 여러 의료관련 직업들의 역할이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몰랐다.


그래서 약사, NP, 치과의사, 의사들 섀도잉을 시작했고,

당시 의대를 다니거나 레지던트를 하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더 알면 알수록, 섀도잉을 하면 할수록,

내가 하고 싶은건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그것에 무지한 한국인들 사이의 연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오클라호마에 사는 3년동안 멘토를 찾고 의사선생님들과 연결 되기 위해 시도했지만 늘 어려웠다.


그러다 지난 달, 캘리포니아에서 한국의사들을 섀도잉하는 프로그램을 알게되었고, 2주간 다녀왔다!


마지막날,

한국인 의사선생님이 운영하시는 노년내과 클리닉을 섀도잉 하면서,

내가 계속 그려왔던게 바로 이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물론 미국인 환자들에게도 그렇다) 미국 의료 시스템 사이의 중간자가 되어 도움을 드리고, 혜택과 해결책을 찾아드리는것!


첫 섀도잉을 하던 날, 나를 처음 만나신 소아과 선생님은 내가 어떤 게 필요한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셨다. 이미 30년전에 다 겪어 보셨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부탁드리지 않은 도움 까지 미리 주셔서 어느새 의대지원준비가 완료 되었다. 그렇게 막연히 Healthcare 쪽이라 생각했던 내 그림이 의대로 정해졌다.


만약 MCAT (미국의대 입학시험) 점수가 안나오면 어떻게 해? 결국 의대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떡해? 라고 불안해 하는 나에게, 남편은 한결같은 따뜻함으로, 난 너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안되면 어때, 해보는게 멋있는거지! 라며 나를 잡아준다.


Here I come, med school!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melodyandscrubs/2



[연재를 마치며]


지난 두 달.

길 잃은 줄 알았던 시간과 끝내 발견한 새로운 좌표로

서서히 이동했던 기록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의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것이 두려운 분이 있다면

그분들께 멀리서나마 작고 단단한 응원을 보냅니다.


스물한 살에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만 해도, 서른여섯에 애 셋 엄마가 되어 의대생이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이제 저는 다시 제 몫의 파도를 기쁘게 맞이하러 갑니다.

우리 각자의 바다에서 건강하게 다시 만나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시즌 2]에서 '애셋맘의 의대 분투 기록'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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