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둘, 늘어난 셔츠를 입고 맞은 나의 봄

"지금은 내 꽃이 만개했다고"

by 이 길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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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계절


10대의 마지막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내 삶은 내가 하고있는 '공부' 밖에 없었다. 워낙 극소량의 인간관계에도 불편함을 못 느끼는 성격인 데다가 마음의 여유나 경제적 여유가 없어 그 시절을 연습실과 학교에서 '이 길의 끝'만 생각하고 지냈다. 왜 그렇게 한가지만 생각했나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또 돌아가도 나는 그럴 사람이라 하는 수 없다.


클리블랜드에서 공부할 때 항상 교회 목사님께서 예배에 오고가는 라이드를 주셨었는데,

살던 집에서 교회까지 가는길에 많은 집들이 있었다.


유일하게 학교 주변을 벗어나 외출을 하는 그 시간에도 나는 '이 길의 끝'을 생각했다.


나도 결혼을 해서 저런 집에서 가족들과 살게 될 날이 올까?

그때는 길어지는 가난함에,

끝없이 작아지는 공부에 미래가 그려지지가 않았었다.


내가 꽃이나 식물이었다면 그 때 나는 꽃도 열매도 까마득히 보이지 않던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다 학생들이었으니 다들 각자의 겨울을 보내고 있었겠지만,

크고 작은 열매를 맺거나 꽃을 피우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봄이, 혹은 나보다 덜 추운 겨울이 너무너무 부러웠다.


클리블랜드를 떠난지 5년이 된 지금 나는, 별것까지 다 귀여운 아기 둘과 함께,

그 때 교회가는 길에 보았던 집 들과 비슷한 집에서 살고있다.

더 바랄것이 없는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말한다.


지금은 내 꽃이 만개했다고. 나의 봄이 온 것이라고.


재미있는 카메라 필터로 돌려본 우리 넷의 모습이 마치 애니매이션에서 보던 행복한 가족의 모습인 것 같아서 몇번이나 들여다 보게된다. (늘어난 셔츠를 입은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예쁘게 만들어주어서 이기도 함).


이 봄을 감사함으로 더 누리고, 조금 더 나누고 살아야겠다.

계절이 바뀌어 또 겨울이 왔을 때, 이 봄을 기억하고

조금 더 의연하게 내 차례를 기다리기를,

다른 사람들이 긴 겨울 끝에 맞는 봄에 진심으로 박수쳐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