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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로디 Oct 22. 2018

기초반 수영일기, 하나

수영장 포비아



새벽 다섯 사십분. 10년쯤 전에 사 놓은 수영복을 챙겨 미리 예약해 둔 수영장으로 향했다. 도착해 카운터에 이름을 말했다. 등록된 이름이 없단다. 인터넷으로 등록 완료 했다고 하니 이곳 00시민스포츠센터 수영장은 인터넷 홈페이지가 없단다. 그러면서 혹시 00스포츠센터에 등록 한 것 아니냐 묻는다. 이곳은 00시민스포츠센터 인데 간혹 이렇게 잘못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미 시간은 여섯시 오 분 전. 네비게이션에 00스포츠센터를 검색하니 10분 거리... 서둘러 00스포츠센터로 향했다. 젠장할! 네비게이션이 이상한 곳을 알려준다. 대략 어디쯤 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 방향으로 안내한다. 세상 믿을게 뭐가 있을까! 7월초의 한여름 새벽은 몹시 더웠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커튼이 쳐진 어두운 거실의 소파에 앉아 흐르는 땀을 닦아내었다.


5월 말, 초여름이 막 시작되던 금요일 오후 아버지의 전화. 어머니가 쓰러져 119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는 연락을 받은 아버지가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하셨다. 5년째 다니던 요가 학원에서 수업을 받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신 게다. 운전을 하고 미팅 장소로 가던 나는 차를 멈추고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5년 전 쯤, 어머니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일하다 넘어져 정신을 잃어 입원을 하셨던 경력이 있었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그때의 기억.


아이들과 일요일 오전 어머니께서 입원해 계시는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어머니는 다행이도 ‘목 디스크’였고, 어머니가 쓰러져 119에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으신 아버지는 어머니가 정신을 잃으셨다고 넘겨 짚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정신을 잃거나 하진 않으셨다. 하지만 한 여름에 무리하게 밭에서 일하시고 요가 학원에서 나이어린(?) 50대 동생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마음과, 선배의 자세를 보여주려는 마음이 더해져 무리한 동작에 몸 전체에 마비가 온 것이다.


다행이 전신 마비는 회복 되었지만 걸음을 걸을 수 있을 때 까지 몇 달 병원에 꼼짝 없이 누워 계셔야 했다. 그런 어머니는 사십이 넘은 아들에게 나이 더 먹기 전에 운동도 하고 뱃살도 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수영을 해 보라고 하셨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내게 10년도 더 전부터 가까운 곳에 있는 수영장에 등록해 다니라고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수영장은 여전히 내게 여유로운 사람들이나 다닐 수 있는 곳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중학생일 무렵부터 수영장을 다니셨던 것 같다. 20년도 더 전이니 수영장에 회원으로 등록해 운동하는 일은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삶을 사시던 부모님은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난 이후에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IMF로 온 나라가 들썩일 때 우리 집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가세는 말 할 수 없이 기울었다. 서울에서 밀려나 경기도 일대로 이사의 이사를 거듭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거실 한 켠에는 어머니의 수영장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내게는 이상한 수영장 포비아가 만들어 졌던 것 같다. 가세가 기울고 살기 힘들어져도 여전히 수영장을 다니는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빚 독촉 전화를 받으며 고함을 치시는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는 그 소리를 다 듣고도 수영장 시간에 맞춰 수영장에 갔다. 등록금이 없어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나가 일해야 했던 나는 수영가방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 내게 수영장은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 버무려진 멀리 하고픈 곳이었다.   


그런 포비아가 어머니의 갑작스런 입원의 충격으로 극복되어 가는 것일까? 어머니의 병원을 다녀온 그날 저녁 무언가에 이끌려 인터넷으로 가까운 수영장에 등록을 했다. 하지만 수영 첫 날부터 온 몸에 식은땀을 흘려가며 갈팡질팡 하는 내 모습을 보며 역시 수영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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