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에 힘을 빼고
월, 수, 금 주 3일 강습을 시작한 첫 주의 마지막 날, 금요일 새벽. 어리둥절하고 혼란 스럽던 마음이 조금은 안정 되었다. 10개 레인의 수영장과 수많은 회원들이 수영을 하며 첨벙이는 물소리 그리고 10여명 강사들의 큰 목소리도 조금 익숙해 졌다. 마음을 잡고 줄을 서서 수평 뜨기를 시작했다. 제일 끝에 섰지만 내 앞의 아버님께(나중에 알았는데 60대) 뒤처지지 않는걸 목표로 삼았다. 발차기를 시작하면 금세 숨이 차올랐고 다리는 여전히 무거웠다. 내 앞의 아버님을 따라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6년 전 일이었다. 결혼한 지 10년째 되던 해를 맞아 아내와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제주도를 좋아하는 아내의 선택이었다. 12월 마지막 주부터 1월 첫째 주까지 2주간의 긴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가진 것 없는, 아니 빛에 시달리는 내게 용기를 주고 장인 장모님의 반대를 설득하며 결혼한 아내였다. 교사인 아내는 방학 때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고, 나도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빚을 갚고 돈을 모았다. 그런 아내를 위해 결혼 10주년은 무언가 멋진 곳에서 보낼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몇 년 전부터 용돈을 줄여가며 한 달에 10만원씩 저금을 해 돈을 모았다. 그런 내게 아내는 제주도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나머지는 모두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평소와 다른 아내의 결정에 조금 의아해 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내의 뜻대로 했다. 그런 아내가 10월 말쯤 조심스레 ‘시험관’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갔지만 아이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많은 남자들이 그런 생각을 하겠지만 워낙 힘든 시간을 보냈던 나는 내 아이에게 나처럼 힘든 시간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아이를 갖는 다는 기대보다 무능한 아버지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없는 것이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결혼해 10년간 열심히 일해 조금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아내의 ‘시험관’ 시술에 대한 요청은 쉽게 결정하수 없는 힘든 문제였다. 아내는 이번 한번만 해 보고 안 되면 포기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 번도 시술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 할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모아둔 돈도 시술 비용으로 쓰고 싶어서 달라고 한 것이고,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시술을 하고 제주도에 가서 편안하게 있다 오고 싶어서 제주도로 여행지를 정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내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아내는 꽤 오래전부터 아내는 ‘불임’에 대한 부담에 시달려 왔던 것 같았다. 나만 힘들다고 생각해 아내가 얼마나 힘들어 할지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는 생각에 더 없이 미안했다. 다만 시술에 실패 했을 때 더 큰 상처를 받는 게 아닐까 걱정된다는 내 말에 후회가 더 클 것 같다는 대답을 들으며 그간 혼자 감내했을 아내의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 아주 조금 짐작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에게 갑자기 찾아온 쌍둥이들은 우리 부부의 삶 전체를 뒤바꾸어 놓았다. 39살의 늦은 나이에 출산한 아내 혼자 쌍둥이들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양가의 어머니들이 일주일씩 번갈아 가며 아내를 돕기 위해 왔지만 이도 1년 만에 두 어머니가 앓아 눕게 되며 어려워졌다. 당연히 나는 온갖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3,4시간씩 잠을 자며 직장생활과 육아에 전념했다. 마흔이 되어 찾아온 새 생명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고 나를 위한 어떤 것 보다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낸 몇 년간 운동과는 더 멀어졌고, 아이들을 재우고 난 이후의 시간에 업무를 처리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 불규칙 적은 생활이 이어졌다. 체중은 한 없이 늘어나고 체력은 한 없이 떨어졌다. 그렇게 생애 최악의 몸 상태에서 수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몸은 무겁고 숨은 차지만 허우적대지 않으려 애썼다. 몸의 힘을 빼고 물 위로 몸이 자연스레 뜨도록 노력했다. 강사가 물 위에 엎드려 있는 내 손을 잡더니 양 손을 평행이 되게 잡은 두 손을 떼라고 했다. 왜 그리 양손을 꼭 잡고 있냐며……. 그리고 일어나 보니 다른 회원들은 모두 양손을 어깨 넓이 정도에 맞춰 평형이 되게 펴고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 양손을 꼭 잡고 발차기를 하며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었던 거다. 양손을 떼고 물 위에 엎드렸다. 이게 뭐라고 뭔가 물에 빠질 것 같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엎드리다 말고 다시 일어나니 강사가 130센티미터 수영장에서 빠져 죽기가 더 힘든 일이라며 자기를 믿고 팔을 펴고 힘을 빼고 엎드리라고 했다.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수영 강사의 말도 쉽게 못 믿는 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엎드렸다. 손을 떼고 물 위에 엎드리니 상체에 힘이 좀 빠진 것 같았다. 가라앉은 다리가 물 위로 더 잘 떠올랐다. 물속에서 강사의 ‘그렇지, 자 앞으로 가세요’ 라는 소리가 들렸다.
** 힘 빼기
생각 보다 물 공포증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런데 수영을 하다 보면 물에 가라 앉는 것이 물에 뜨는 것 보다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에 가라 앉아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 속에 가라 앉지 않아 힘들어 하는 경우는 생겨도. 수영 장에 가서 수평 뜨기 자세로 바닥에 가라 앉아 얼마나 버틸 수 있나 해 보면 금새 알 수 있다. 아마 가라 앉으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몸이 둥둥 떠 오르는 걸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냥 물 위에 몸을 올리고 힘을 짜 빼고 있으면 몸은 둥둥 뜨기 마련이다. 힘을 빼고 팔 다리를 휘 저으며 호흡을 하면 그게 자유형 이다. 다른 영법은 '영' 으로 끝나는데 자유형만 '형' 으로 끝나는 거, 이거 그래서 그런거 같다. 마음껏 휘 저어 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