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로디 Oct 23. 2018

기초반 수영일기, 셋

풋내기 발차기



수평 뜨기를 하며 25미터 레인을 두 바퀴 돌았다. 수영에 한껏 자신감이 솟아올랐다. 무엇이라도 배우면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탄탄한 근육질의 수영 강사는 무심한 표정으로 수영장 데크에 걸터 앉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 발을 발레 동작처럼 포인 한 상태에서 발차기를 해 보라 했다. 팔을 뒤로 하고 몸을 지탱하고 엉덩이를 데크에 걸치고 발을 물에 담근 채로 발차기를 시작했다. 한 열 번쯤 하고 나니 허벅지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종아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5분쯤 발차기 연습을 하고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왔다. 수평뜨기를 한 상태에서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가다 숨이 차면 일어선 후 다시 수평뜨기와 발차기를 하며 앞으로 가라 했다.  


발차기를 하는 순간 수평뜨기를 하며 가진 자신감은 한순간 사라졌다. 스펀지처럼 수영을 배우겠다는 자신감은 스펀지처럼 물을 먹고 가라앉는 내 몸의 현실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발차기를 하면 할수록 숨은 차고 몸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 같았다. 나만 빼고 다 잘 하고 있었다. 강사는 내게 뭐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발차기 소리와 물 속에 처 박혀 있는 고개 덕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10년도 더 된 물안경으로 물이 새 들어와 앞을 보기도 힘들었다. 어떻게 돌았는지 왕복 25미터를 돌고 와 25명의 회원들 제일 끝에 섰다. 물을 열 바가지 정도는 먹은 것 같았고, 오래된 물안경을 벗으니 물이 얼굴로 주루륵 흘러 내렸다. 수영장 천장이 노랗게 보이고 종아리는 저려왔다. 


젠장... 

이런 식이면 한 달을 버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남은 수업의 남은 25분을 버티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는 1번 회원부터 다시 발차기를 하며 출발했다. 드디어 내 순서가 되었다. 그런데 강사가 내게 무릎을 구부리지 말고 힘을 좀 빼고 천천히 발차기를 해 보라며 

“회원님, 꼭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 같잖아요. 힘을 빼고 천천히 해 보세요.”

라는 말을 하더니 ‘출발’ 신호를 주었다. 


다리에 힘을 좀 빼고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천천히 발차기를 했더니 조금 나아졌다.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명치끝이 찡 하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살면서 몇 번의 눈물을 흘렸는지 셀 수 있을 정도로 눈물이 메마른 나였기에 몹시 당황 스러웠다. 물 안경으로 스며든 수영장의 물과 눈물이 뒤섞여 앞은 더 보이지 않았다. 그런 희미안 물안경 너머로 온 몸에 힘을 주고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는 내 모습이 자꾸 보이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집으로 찾아와 빛 독촉을 하던 사람들. 스트레스를 받아 얼굴이 돌아가 집에 누워 있던 어머니의 얼굴. 하던 공부를 접고 공장에 나가 일하던 내 모습.... 왜 느닷 없이 이런 기억들이 눈 앞으로 지나가는 것인지...



그렇게 25미터를 두 번 왕복하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 냈다. 부도난 집의 아들이 된 순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두려웠다. 그들이 나를 불편해 했고, 그런 불편한 눈빛을 보는 것이 불편했었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부담이 되지 않게 나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잘 포장해 살아 왔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수영장에서 아무 상관없는 수영 강사의 ‘왜 그렇게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 거리냐’는 말이 이리 나를 흔들줄은 몰랐다. 25미터 왕복 두 바퀴면 100미터. 시간으로는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15년간 나는 나에게 100미터의 거리도, 10분의 시간도 여유를 주지 못했던 것일까. 그런데 이런 감정이 쏟아 지고 나니 묘한 청량감이 올라왔다. 


**풋내기 발차기

수영장에 처음 가면 발차기를 먼저 시작 한다. 이 때의 발차기는 다른 영법의 발차기가 아닌 자유형 발차기. 수영장에서 배우는 4개의 영법인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 중 가장 처음 배우게 되는 자유형. 이 자유형 발차기는 말이 ‘발차기’여서 그렇지 처음에는 허벅지로 물을 눌러서 나가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초보자들에게는 ‘허벅지 누르기’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무릎을 구부리지 말라는 말도 무릎 아래로만으로는 추진력이 약하기도 하고 몸 전체를 롤링하며 나가는 자유형의 균형과 효율성까지 고려했을 때 허벅지로 눌러주는 것이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벅지로 물을 꾹 눌러주는 기분으로 발차기 연습을 해야 한다. 데크에 앉아서 할 수도 있고, 물에 들어가 데크를 바라보며 양손으로 데크를 잡고 발차기 연습을 할 수도 있다. 수영장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킥판을 잡고 연습하는 것이 가장 흔한 연습법이긴 하다. 다만 우리 강사는 처음부터 킥판에 의지하면 앞으로 뻗은 손이 킥판을 누르는게 습관이 돼서 나중에 균형감이 떨어진다고 킥판 없이 연습을 시켜서 나중에야 킥판 잡고 연습을 했다. 

어쨌든 자유형 발차기는 처음에는 허벅지를 눌러 주는 것에 신경써야 하고, 그래서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게 연습해야 한다. 그렇게 허벅지로 누르는 것이 몸에 익숙해 지면 물의 저항으로 무릎이 조금 구부려 지는 것은 오히려 추진력에 도움을 주게 된다. 어쨌든 처음에는 허벅지를 힘차게 누르는 연습부터!! 

작가의 이전글 기초반 수영일기, 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