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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Nov 05. 2019

어느 가을, 직장인의 출근길

#불안, 힘이 되어준 아마리


  누군가에게는 무더위가 끝나고 서늘한 바람으로 설레는 가을이 시작된다. 그러나 나에게 가을은 서늘한 바람과 함께 불안이 찾아온다. 유독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겁이 나기 시작한다. 불안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기가 바로 가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약을 먹는 것으로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도 출근하는 지하철 2호선 안, 나의 머릿속에는 '가기 싫다'와 '퇴사하고 싶다'라는 말을 번갈아가며 수백 번 반복하고 있다. 많은 직장인들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 회사가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이 되었을까. 아마 내가 존경하던 팀장들도 한순간에 좌천이 되거나 내쳐지는 것을 보게 되었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회사가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지 3년이 흘렀지만 바뀐 것 하나 없는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바뀐 것이 있다면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출근길도 걱정과 불안을 잊기 위해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책이었다. 제목이 정말 섬뜩하지 않은가? 죽기로 결심했다니 말이다. 책 속에는 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주인공 아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대략 내용은 이렇다. 계약직으로 전전긍긍하다가 인생의 목표가 없어진 아마리는 1년 뒤에 죽기로 결심한다. 1년 동안 아마리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모르는 이 시점, 아마리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책을 읽던 중 나의 불안을 멈추게 한 글이 있었다.


고향에 있을 때 나한테 요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적의 행군을 막으려면 술과 고기를 베풀어라.' 그게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168p-

 

 그렇게 나는 내려야 할 종착지 보다 한참을 더 지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지각으로 더욱더 증폭되었을 불안이 찾아왔겠지만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마리에게 위로받을 수 있었고, 위로받기를 멈추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하철을 내리지 않은 선택을 했다. 아마 지하철을 내렸다면 나의 삶도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 가을, 출근길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하루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는 위로받을 수 있는 시간일 수도. 그렇게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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