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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Dec 26. 2019

회피

불안장애 환자의 일상

 회피란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하여 직접 하거나 부딪치기를 꺼리고 피함'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회피는 어떤 사람들이 경험할까? 살면서 아마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회피를 경험했을 것이다. 학생일 때 숙제가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다던지, 회사원으로서 회사가 가기 싫어서 병가를 쓰고 쉬었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들도 회피의 경험으로 포함된다.

 그러나 자신의 삶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회피를 경험했던 적이 있는가? 내가 해왔던 일들이 적성에 맞지 않다며 새로운 직업을 찾고 싶어서 그만둔다던지, 모든 상황을 전부 회피하고 싶어서 떠난다던지 말이다. 나는 아직 그 정도의 회피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그나마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큰 회피는 휴직이라는 선택이었다. 회사를 완전히 회피하지 못했던 나의 선택은 선뜻 다른 상황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내가 회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불안장애 환자는 유독 회피라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풀려고 하지 않고 회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두 번 정도의 회피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대상에 대해 반복적으로 회피하다 보면 결국 실체가 없는 두려움을 마주하게 된다. 실체가 없는 두려움은 나를 극에 달하는 불안한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결국 불안장애 환자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두려운 대상에 대해 회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일반적일까? 그렇다. 사실 사람이라면 두려움을 회피하고 싶은 것이 본능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회피를 경험하기 전, 두려움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나의 이야기를 말하자면, 나에 가장 큰 두려움은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는 내가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긴 시간 동안 해왔던 프로젝트이기에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다가왔고 나는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일정을 연기하고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피는 나에게 부메랑처럼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불안장애 환자가 되었고 휴직을 선택하게 되었다.


 두려움의 대상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문제를 해결하면 간단하게 풀릴 문제이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풀릴 문제라면 불안장애, 공황장애 환자들 또한 없을 것이다. 만약 내가 회피하고 싶은 대상이 직업이라면? 대학교 4년 동안 공부했던 경험, 그리고 직장에서의 7년의 경험, 총 11년의 나의 경력을 뒤로한 채 그 직업을 회피할 수 있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용기가 없는 문제일 수 도 있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수 도 있다. 내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고 답을 구하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기에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떤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일일수 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이 문제에 대해 정신과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다.

의사 선생님 : 지난 한 주간은 어떻게 지냈어요?  

나 : 생각보다 즐겁게 지냈습니다. 가끔은 불안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의사 선생님 : 무엇이 그렇게 불안을 가져오는 것 같아요?

나 : 사실 저는 직업에 대해 회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큰 것 같습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고요.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사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1년 죽어라 열심히 하면 무슨 일이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생략)

의사 선생님 : 음. 다른 일이라.... 제가 지금까지 상담했던 xx 씨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아 보여요.

나 :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자신을 존중 안 한다니..

의사 선생님 :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존중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xx 씨 지금 하는 일이 뭐라고 하셨죠?

나 : 프로그래머입니다. 앱 개발자요.

의사 선생님 : 그럼 그 직업이 되기 위해서 대학교 내내 공부했을 것이고 지금 회사에서도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는데 말이죠. 근데 그 일을 접고 다른 적성이 맞는 일을 찾는다구요? 과연 적성에 맞는 것이 일이 되었을 때도 즐거울까요?

나 : 제 생각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한다는 것은 분명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 : xx 씨는 굉장히 이상적인 상황을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직업이 의사지만 제가 적성이 맞는 것 같아 보여요? 사실 저는 춤추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퇴근하면 춤을 춘답니다. 제 적성은 춤추는 게 맞아요. 그렇다고 제가 정신과 의사를 그만두고 춤을 춘다면? 아마 빈털터리가 되었을 겁니다.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최고가 될 생각이라면서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한다면 그 분야에서 더 빨리 최고가 될 수 있지 않아요?  이미 그 분야에서 돈을 받고 일을 하고 있지 않나요? 왜 본인이 하는 일을 존중하지 않아요?

나 : 그렇긴 한데 미래 10년을 보았을 때 이 직업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거든요. 아..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안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되네요..

의사 선생님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 할 수가 없죠.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불안할 정 도로고 걱정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고요. xx 씨. 본인의 일에 대해 존중을 해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일이 정말 10년 후에 앞이 보이지 않는지. 제가 보기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1주일 정도 생각을 해보고 난 뒤에 다시 상담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나 : 네 알겠습니다.

 수십 번의 상담을 진행했지만 처음 의사 선생님의 말에 반기를 들게 되었다. 일에 미쳐서 살았더니 어느 순간 성공해 있더라 라는 성공한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말로 표현하면 죄송하지만 '꼰대' 같아 보였다. 마치 부모님 같은 말을 하고 계셨다.

 

 그러나 점점 나는 생각이 깊어졌다. 내가 정말 이상적인 상황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내가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직업에 대해 그냥 내가 회피하고 싶은 것인가?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회피를 하려고 선택을 하는 경우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만큼 나에게 돌려서 말하시지 않고 단호하게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가? 조금씩 나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겼고 직업에 대해 다시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게되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분야에서 더욱 전문가가 되면 어떨까' 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이라면 직업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일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반드시 다시한번 되돌아보길 권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일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건지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재의 상황을 회피하고자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에 해당하는 무언가는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게 불안이라는 감정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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