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밍 Mar 16. 2020

마지막 출근, 그리고 퇴사

#불안장애 직장인 8년 차의 마지막 출근

 나의 마지막 출근 20. 3. 11.

 기분이 묘했다.

 아침에 눈을 뜨기 전까지만 해도 아니 회사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마지막 출근길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자리에 앉고 퇴직인사 메일을 작성할 때부터였을까? 마지막 출근이라는 것이 점점 나에게 다가왔다. 퇴사라는 것이 홀가분할 줄만 알았었는데 무슨 느낌인지 대체 모르겠다. 아쉬움인가 아니면 슬픔인가? 나를 불안장애 환자로 만들어버린 회사한테도 이런 감정이 들다니. 회사와 함께한 7년이라는 세월을 무시하지 못하나 보다.

 

 회사생활 7년 동안 내 주변에는 나와 함께 생활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파트원, 팀원, 동기, 각 사업부 담당자. 정말 나와 형 동생과 같이 친하게 지냈던 분들이다. 당연히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퇴사 소식을 알리지 못했다는 것이 그들에게 섭섭하게 다가갈까 조금은 걱정되고 미안하다. 사실 퇴사하는 것이 자랑도 아니고 좋은 일도 아닌데 여기저기 다 말하고 다니는 것이 조금 그렇다고나 할까? 코로나 19로 인하여 회사 내 층간 이동을 할 수 없어 만날 기회가 부족해서? 라며 핑계를 대본다. 직접 내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한 분들에게 다시 한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는 출근과 동시에 힘들긴 했지만 즐거웠던 일이 더 많았던 회사생활의 마지막 퇴직 인사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 줄 한 줄 글을 작성할 때마다 퇴사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늘 받기만 했던 퇴직인사 메일들이었는데 내가 작성하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 회사만을 평생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어디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가 작성하고 있다니 정말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썼다 지웠다 수십 번 반복하여 마침내 퇴직인사 메일 작성을 마쳤다. 나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퇴근 1시간 전 예약발송이 되도록 하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퇴직인사 메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메일 작성이 끝날 무렵 팀장님과의 점심 약속이 잡혔다. 조금 의외였다. 내가 퇴사를 한다고 의사를 밝히고 난 이후 팀장님과의 교류가 없었다. 평소에는 대화도 많이 했던 팀장님인데 3주 동안만큼은 서로 마주칠 일 조차 없었다. 마치 만남을 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식사를 하면서 퇴사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직을 한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말도 안 되는 사업을 한다고 말씀드렸다. 점점 더 이야기는 산으로 흘러갔고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죄송한 일이다.  

 사실 팀장님과 일개 사원이 나눌 대화는 굉장히 한정적이다. 다행히(?)는 아니지만 코로나 19에 대한 사회적 이슈가 컸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만큼 지금 할 수 있는 대화가 코로나 19밖에 없었다. 이미 나의 퇴사 이야기는 꼬일 데로 꼬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팀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붙잡지 않았다고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사실 말하자면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조금은 서운했고 섭섭했다. 그러나 뜻밖이었다. 팀장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퇴사하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여태껏 많은 사람들이 퇴사한다고 했을 때 자신이 붙잡은 사원은 10%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리고 붙잡은 10% 또한 2달 남짓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를 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결심했다고 말씀했다. 오해가 조금은 풀린 듯하다. 팀장님이 나의 퇴사와 함께 나와의 인간관계를 끝내는 것인 줄 오해했었다. 오해가 풀린 나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나의 말에 팀장님이 답했다. '죄송하면 계속 다니지 그래....'라고 말이다. 약간은(?) 서운했던 감정이 있으셨던 것 같긴 하다. 나한테 참 잘해주셨던 팀장님이었기 때문인가. 그래도 그 말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나와의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오해가 풀리고 오전에 예약 메일을 보냈던 시간이 다가왔다. 메일의 발송과 함께 수십 개의 메신저와 전화가 폭주했다. 나의 퇴사가 뭐라고 이토록 관심을 가져주는 것인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다들 나에게 하는 이야기는 비슷했다. 왜 퇴사를 하는지? 이직을 하는지? 어느 회사로 가는지? 에 대해서이다. 그들에게 나의 거취가 그렇게나 궁금한 것일까? 많은 직장인들의 관심사가 퇴사이기 때문일까? 뜻의 관심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찰나 일부 친했던 동기들은 나의 퇴사 사유를 알만한 동기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정신적으로 아직도 아파서 퇴사하는 것인지 말이다. 걱정을 하는 그들에게 메일 한통으로 나의 퇴사 소식을 접하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퇴근시간은 다가왔고 팀장님, 그룹장님 마지막으로 파트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이제는 자유롭게 다시 들어올 수 없는 곳이 되었다. 7년간 일요일, 공휴일, 휴가를 제외하고는 늘 있던 곳이기도 하고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한 동료들이 있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순간 정말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나의 선택으로 인하여 한순간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변한 곳. 그곳이 회사라는 존재인데 '그토록 힘들어하면서 나는 왜 그만두지 못했었던 것일까', '퇴사라는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나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되돌릴 수 없을뿐더러 나에게는 정말 힘들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많았던 회사이기에 홀가분할 것만 같았고 행복할 줄만 알았던 나의 마지막 퇴근길은 오히려 슬픔과 섭섭함 그리고 아쉬움의 감정들로 가득 찼다.   


그렇게 마지막 퇴근이 되어버렸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처럼.

이전 10화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나의 퇴사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