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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밍 Mar 09. 2020

1주일 앞으로 다가온 나의 퇴사일

#불안장애 환자, 7년차 직장인의 불안극복기

 

 퇴사 3주 전, 나의 업무를 인수인계받을 담당이 정해졌다. 나와는 전혀 교류가 없는 2년 차 신입사원이었다. 그 친구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었다.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이 친구에게 8년 차 개발자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인수인계하려 하니 막막했다. 회사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던 나지만 사실 나 또한 신입사원 2년 차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을 인수인계받았던 기억이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프로그래밍 전공이었다는 것이 이 친구와 다르다는 점이다. 나야 퇴사를 하고 나면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이 친구가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내가 했던 일에는 책임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했던 업무만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고객에게 직접적으로 서비스하는 부분이 있기에 조금 더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실수에 대해서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부분이기도 했고 부담감을 느꼈 부분이기도 다. 또한 나의 불안의 원인이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남은 시간을 그 친구에게 쏟아붓기로 결심했다. 나와 같이 불안장애를 경험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수인계뿐만 아니라 체계적으로 프로그래밍 세미나를 진행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사실 다른 동료들은 이제 퇴사할 건데 뭐 그렇게 까지 하냐며 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하면 너무 뻔한 착한 스토리가 될 것 같다. 사실 나랑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게 착하진 않다는 말을 하고 싶다. 사실을 말하자면 퇴사를 앞두고 업무를 놓은 지 2주 정도 되었다. 사업부에서 요청이 와도 받아주지 않았다. 할 테면 해봐라 식이었다. 언제 해보겠는가. 곧 퇴사를 앞둔 사람이 아니고선 할 수 없지 않겠나. 나와 같이 일했던 사업부 동료들그런 나의 모습도 웃으면이해주고 넘어가 주었다. 굉장히 짜증 났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곧 퇴사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과 업무시간에 티타임을 갖는다. 이것 또한 내 일상이기도 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나를 좋게 표현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회사내 자리에 있는 한 인수인계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짧은 시간이지만 후배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만큼은 사실이다.

  

 그렇게 업무 인수인계동시에 오랜 기간 동안 나의 상담을 맡아주신 상담사 분과 상담도 진행하게 되었다. 상담사님께 퇴사를 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 어느 정도 직감을 하셨던 듯 나에게 말씀하셨다. '휴직을 하고 돌아와서 잘 적응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며' 말이다. 보통 휴직을 하고 나서 많은 이들이 퇴사를 한다. 내 동기 또한 몇 달 전에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회사원에장기간 리프레쉬 휴가를 주면 안 될 것 같다. 지금 회사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100퍼센트 딴생각을 품고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나처럼 말이다. 휴직하고 돌아와서 좋아진 모습을 보며 굉장히 반가워하셨던 상담사님이어서 그런지 굉장히 아쉬워하셨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되찾긴 하였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렇게 좋은 상태는 아니었는데도 말이. 또한 변함없는 회사 일상에 대해 의욕이 생기지 않기도 했다. 그렇게 상담사님께 사실대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회사 인사팀에 모든 내용이 전달될 것을 알았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퇴사를 하고 내가 이직을 하는 것조차도 말이다. 마지막이라 두려울 것이 없었나 보다). 그렇게 상담사님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사실 나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늘 다음 일정을 잡아주시던 상담사님께서 다음 일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셨다. 아직 퇴사까지 3주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말이다. 회사 내 상담사분이셔서 그랬던 것일까? 퇴사 이야기와 함께 상담사님과의 상담도 마지막이라는 것이 조금은 아쉽고 섭섭했다. 회사가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 상담을 진행했다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때문이다. 그래도 상담사님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분이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생명의 은인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의 퇴사 절차는 조금씩 진행되어갔다. 국민연금 관련 서류라던지, 퇴직원이라던지, IRP 계좌 개설이라던지 말이다. 하나씩 하나씩 진행될 때마다 나의 무거운 어깨가 조금씩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거웠던 책임감들을 내려놓으니 나의 불안은 점차 사라졌다. 나의 불안장애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이 회사에서의 뻔히 예상되는 결말이 불안의 원인이었을까? 결국 이직을 결심한 나에게 불안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러고 보니 회사에서의 뻔한 미래가 나의 불안의 이유였던 것 같다.

 이직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다. 걱정도 있을 것이고 설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인데도 나에게 불안과 걱정은 찾아오지 않고 있다. 지금 하루하루는 정말이지 행복하다. 요즘은 새로운 업무에 대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갖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8년 차인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또한 많은 지인들은 그냥 들어가서 하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금방 잘할 거니까 우선 푹 쉬라고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내 동료는 나의 이직을 추천했고 이끌어 주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나 내 성격은 정말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알겠다고 하면서도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걱정이 많은 나의 성격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즐겁다. 무언가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몇 년 만에 나의 전공, 밥벌이 대해서 공부하는 것인지 조금 놀랍다. 나의 밥벌이를 이렇게까지 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에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 여태껏 내가 맡았던 업무는 Ctrl+C, Ctrl+V만 할 줄 알면 됐던 업무였기에 조금의 성장도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성장이 필요한 업무는 아니라는 것이다. 래서 그랬는지 공부에 대한 필요도 느끼지 못했었고 공부를 하지 않았 됐었다. 지금은 조금 후회하고 있다. 조금 더 다른 분야에 대해 공부를 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후회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간사하다. 그렇게 후회한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지만 지금 나는 엄청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않다. 그냥 내가 질리지 않을 만큼만 하고 있다. 그리고 놀 거 다 놀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의 퇴사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퇴사일이 점점 다가오는 그 기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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