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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주디 Jan 22. 2022

내 이상형은 2XL

어쩌다 보니 배 나온 남자가 이상형

나의 이상형은 키가 크고 과묵한 남자였다.


그 이유는 우리 집 남자들이 말이 많았고, 내가 키가 작기 때문에 나처럼 작은 남자는 싫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던 남자는 우리 반에서 가장 얌전한 남자 친구던가,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남자 친구였다.


그런 이상형에 부합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었다.

내 남편은 키가 크고 과묵한 경상도 남자다.


연애할 때 무심한듯하면서도 챙겨주는 신랑이 좋았고, 내가 혼자 말할 수 있게 과묵하게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아서 든든했다.


선물을 줄 때도 길에서 주었다며 낯간지럽다며 슬쩍 주는 그 사람은 정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였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과묵하다가도 나를 웃게 하는 그의 매력에 빠져서 우린 일찍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외벌이 었음에도 신랑의 월급은 고스란히 나에게 보내졌고, 모든 경제권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인터넷뱅킹이나, 인터넷 쇼핑은 내 담당이었다.


그래서 신랑은 가끔 나에게 인터넷 쇼핑을 부탁했고, 나는 조금은 귀찮은 듯 투정을 부리며 그 부탁을 들어주었었다.


그런데 핸드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며, 모바일앱에서 쇼핑이 쉬워지고 각종 페이들이 생기며 몇 년 전부터 신랑은 조심스레 모바일 쇼핑을 즐기기 시작했는데, 점점 집으로 택배 오는 횟수가 많아졌다.



특히 신랑은 먹는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취미도 먹방 투어, 먹방 티브이를 보는 것이었는데, 내가 워킹맘이 되며 저녁식사를 잘 챙기지 못하고부터 배달어플과, 마트 어플을 이용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결혼 전엔 신랑에게 그래도 기성복 중 제일 큰 사이즈가 맞았었는데, 결혼 후 내가 너무 잘 먹인 탓인지(?)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기성복은 맞지 않는다.


그래서 몇 년 전 외국여행에서 트렁크 하나를 신랑의 외국 사이즈 2XL옷으로 가득 사온적이 있었다.

이제 몇 년씩 입었던 옷이 해지고, 새로 사야 했는데 신랑이 혼자 모바일 쇼핑을 한 모양이다.


요즘 내가 집에서 일하고 있으면 항상 신랑에게 오는 전화는 지금 택배 올 거니 받아달라는 얘기인데, 정말 요즘은 매일매일 신랑의 택배가 오고 있다.


그중 신랑이 시켰던 빅사이즈 옷들이 왔는데, 온라인 쇼핑에서 옷을 살 땐 몇 번의 시행착오와 반품비를 감안하고 사야 하는 걸 몰랐던 신랑은 요즘 그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반품이 귀찮으니 아들에게 맞다고 우기며 아들에게 입으라고 하기도 하고, 얼마 전엔 중국에서 오는지도 모르고 직구로 빅사이즈 옷을 시켰다가 아들에게도 맞지 않으니, 나에게 입어보라며.. 살찐 나에게 맞다고 내가 딱 맞다며 나에게 주려고 시킨 거라고 우기기까지 했다.


우리 가족은 거실에서 그 택배를 뜯고, 신랑에겐 들어가지도 않을 사이즈라 아들이 먼저 입어보고, 내 차례까지와 입어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이들도 엄마한테 맞으니 엄마가 입으면 되겠다고 하는데, 정말 운동 갈 때 입을까 하다가도 빅사이즈라는 사실에 순간 화가 나기도 웃기기도 했다.




신랑은 오늘도 온라인에서도 맛집 음식이 배달된다며 신나게 쇼핑 중이다.

내가 좋아했던 키 크고 과묵했던 남자는 어느새 없어지고, 내 옆에는 배 나온 뚱뚱한 남자가 매일 맛집 이야기를 하고 있다.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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