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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한주디 Jan 27. 2022

18년 차 며느리의 시어머니 이야기

상위 1% 시어머니?!

며칠 전 온라인 친구가 추천해준 상위 1% 시어머니에 관한 글을 읽고 나의 시어머니는 상위 몇% 시어머니 일까? 생각을 해봤다.


벌써 나도 결혼 18년 차로 시어머니를 만난 건 20년이 넘었다.


신랑과 연애때 친구들과 여름휴가로 찾아갔던 시댁에서 어머니의 첫인상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나를 배려해주시고 본인을 희생하신다는 게 느껴졌었다.




처음 시집갔을 때 낯선 곳에서 내가 의지하고 따를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결혼 후 신혼여행에서 다녀온 후부터 시댁에 가면 어머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 중 그래도 나에게 먼저 말 걸어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은 시어머니밖에 없었다.


결혼을 하기 전 나는 제사상을 차려본 적도 없었고, 집안일을 해본 적도 거의 없었는데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와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시면 배우고자 해서 어머니를 따라다녔는데, 사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거의 없었기에 어머니 옆에서 그냥 조잘조잘 이야기하거나, 가끔씩 설거지를 하는 게 내 담당이었다.


근데 시어머니는 그런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음식을 하면 제일 먼저 내 입에 넣어주시고 간이 맞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솔직히 우리 친정엄마가 해주는 음식보다 시어머니의 음식을 더 좋아할 정도로 시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


집안일에 서툰 나에게 시댁에 갈 때마다 밑반찬과, 생선, 해조류, 각종 양념들을 챙겨주셨고, 아직까지도 고추장, 된장, 참기름, 깨소금, 김치, 쌀 등등 택배로 자주 보내주신다.


내가 제일 기억에 남는 택배는 내 생일날 온 택배였는데, 겨울 생일인 나에게 택배로 미역국과, 각종 전과 반찬을 해서 보내준 일이다. 그날 택배를 받고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친정엄마와 친구들에게 자랑 자랑하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결혼생활이 다 좋았던 것은 아니기에, 신랑과 싸우거나, 경제적으로 힘들 때면 괜히 아무 잘못 없는 어머니께 하소연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부족한 아들 때문에 우리 며느리가 고생한다.라고 말씀하시니 하소연하려고 했던 내가 더 미안해졌었고, 항상 나를 위한 말을 먼저 해주시는 어머니께 감사했다.




워킹맘이 되고 N잡으로 일하게 되며 매일이 너무 바빴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했고, 나의 성장을 위해 계속 공부 중이었기에 코로나 이후 명절에 시댁에 가지 못했다.


신랑과 아이들만 보내기도 했고, 다 같이 안 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괜찮다며 우리 건강부터 챙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다 12월 시아버지의 칠순이라 오랜만에 찾아뵈었는데, 그날은 또 내가 준비하고 있던 자격증 시험날이었다.

그날 우리 가족은 새벽 4시에 시댁에 도착했고, 나는 그때부터 자격증 시험공부를 한다고 시댁 부엌에서 불을 켜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피곤하겠다며 간식 등을 챙겨주셨다. 공부를 하는데 부엌 식탁 한켠에 있는 어머니의 책과 노트를 볼 수 있었다.


작년에 내가 한참 책에 빠져있을 때, 어머니께서도 한자도 배우고 싶고 책을 읽고 싶다는 얘기를 내비치셨고, 나는 어머니께 몇 권의 책과 한자 문제집을 보내드렸었는데, 그 책들이 쌓여있었다.


어머니께서 아침 준비를 하시러 새벽같이 부엌으로 나오셨는데, 수줍은 듯 나에게 지역신문에 어머니의 기사가 실렸다고 보여주셨다.

마을 지역의 자원봉사 김장이야였는데, 우리 어머니가 시댁 지역의 여성회장으로 계셔서 봉사활동을 주도해서 하시고 계셨고, 그 내용이 신문기사에 실린 거였다. 나는 어머니께 너무 멋지다며, 어머니께 대단하시다고 칭찬해 드렸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이번에 마을 어른들께 쓴 글이 신문에 실린다고 봐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요즘 배움이 재미있으시다고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나도 요즘 배움이 너무 즐겁다며, 어머니께 이제 에세이 책도 쓰고 에세이 작가도 되고 싶어요.라고 얘기까지 해버렸다.


어머니께서는 언제나처럼 우리 며느리 하고 싶은 거 다하라며 응원해 주셨다.


그리고 그날 아침 나는 시댁 안방에서 온라인으로 자격증 시험을 보았고, 그날 아버님 생신상은 어머니께서 차리게 되셨다. 


어머니는 아무 걱정 말고 시험이나 잘 보라며, 내가 좋아하는 커피까지 방으로 가져다주셨고 응원해 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온라인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고, 어머니께 합격 소식을 알려드렸다.




나는 집으로 와서 어머니께서 읽을만한 책들을 추천받아 보내드렸고, 어머니는 뭘 또 책을 보냈냐며 좋아하셨다. 


이제는 시어머니와 함께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정말 배움에 늦은 때는 없는 것 같다. 나도 시어머니도 계속 배우고 더 멋지게 성장할 일만 남은 것 같다.


이번 설에도 나는 시댁에 가지 못한다. 대신 명절을 보내고 시부모님께서 우리 집으로 오신다고 하셨다.

그때 시어머니와 책 이야기와 지역신문에 실린 어머니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18년 동안 한결같이 응원해 주신 나의 시어머니는 나에겐 언제나 상위 1% 시어머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책과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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