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elting day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elting city Jan 22. 2019

#2018 상반기 결산

2018년 07월

1. 절대 #롱패딩 따위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사람을 김밥처럼, 미쉘린 타이어 캐릭터처럼 만드는 아주 못생긴 옷이니까. 경솔했던 나는 한파가 절정일 때부터 꽃이 다 피어날 때까지 그 옷을 피부처럼 입고 다녔다. 벗을 수 없지,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하고 좋은걸. 한국인에게 롱패딩은 이동식 이불이다. 검은색 오리털 이불. 모바일의 민족에게 어울리는 겨울 필수 상품. 몇 없는 친구들에게 롱패딩 전도사가 되었다. 아 참, 동파 때문에 집에 물이 새서 동네 게스트하우스에 4일이나 머물렀다.


2. 고도로 훈련된 스포츠 선수들의 몸과 움직임을 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88 서울올림픽의 스펙터클을 한편으로 부러워했는데, 어느덧 나는 18 #평창올림픽 중독자가 되어 나중에 “너네 평창 올림픽이라고 아니? 나 때는 말야-”로 시작하는 추억팔이나 늘어놓는 꼴 보기 싫은 1호선 광인이 될까 봐 정말 무서웠다. 뛰어난 여성 스포츠인을 많이 알게 되었고, 응원하는 선수가 부쩍 많아졌다. “컬링같이 재미없는 운동을 왜 할까”라고 했던 과거의 헛소리를 반성한다. 언제나 말을 아껴야 한다.


3. 로켓맨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멀다고 말하면 안되갔구나” 농담을 하고 같은 언어로 판문점 선언을 읽고. 아무튼 그 둘은 벌써 두 번이나 #남북정상회담 을 했고,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은 트럼프를 만났고, 종전이 선언될 것이라고 하고, 어쩌면 눈 깜짝할 사이에 통일이 될 것 같다고도 한다. 아, 며칠 전 김종필이 죽었다. 냉전시대와 군부독재시대의 종말에, 이 전환의 시대에 가끔 내가 한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얼떨떨할 때가 있다. 사실 남북 화해 협력 모드가 기쁜 이유는 따로 있는데, 옥류관 냉면도 못 먹어본 평냉스플레인 아재 미식쟁이들이 더이상 젓가락질에 훈수를 얹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선생님들, #평양냉면 먹는 법은 레드벨벳에게 배우세요.


4. XXX텐타시온이 총기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최악의 여성혐오 범죄자였다. 청소년들에게 심각하리만치 해가 되는 사람인데 합리주의의 나라인 미국에서 그렇게 성공한 것이 수상했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인 시대에 의구심을 가져 무엇하나. 악마의 재능으로 만든 명반이라고 칭송받는 앨범을 몇 번 들었을 때 굉장히 불쾌했다. 아마 다시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5. 두 번의 #혜화역시위 에 참석했다.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서도 남자들은 몰카를 찍더라. 환멸 이상의 말로 모욕, 모멸감을 표현할 수 없다. 연대하는 자매님들이 만든 빨간색 시위 대열 안의 모든 순간이 따뜻했고 이성적이었다.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여성문제 관련 전시 중에는 ‘히든 워커스’ 전이 밀도있고 좋았다.


6. 1월에는 #조정치 정규 3집 [3]이, 6월에는 #조원선 싱글 [서두르지 말아요]가 나왔다. 회사에 들어와서 참여한 앨범 중에 제일 뿌듯한 앨범이다. 나는 두 뮤지션의 짱짱 팬이지만 때로 팬심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들키면 뭐 어때! 좋아합니다!


7. #수영 을 시작했다. 물에서 허우적댈 때만큼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진작 시작했다면 지금보다 좀 더 건강했을까. 그리고 수영복에 브라캡을 넣을 때마다 생각한다. 남자들처럼 덥다고, 땀난다고 훌렁훌렁 벗어도 시선강간 당하지 않았으면, 노브라가 자연스러운 일이 됐으면 좋겠다. 불꽃페미액션을 지지한다.


8. 지방선거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건 #신지예 후보가 출마했다. 비록 벽보는 끊임없이 훼손당했지만, 정말로 큰 성과가 있었다.


9. 러시아 #월드컵 은 기대도 안 했는데, 스페인vs포르투갈 경기와 세상 재밌었던 독일전이 있었고, 아무튼 거의 모든 경기를 챙겨보고 있다. 축구장 잔디는 초록색이고, 초록색을 보면 눈이 편안하잖아.


10. 로베르 르빠주가 연출한 #연극 <달의 저편 The Far Side of the Moon>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됐다. 월광 소나타와 무중력의 유영과 외로움과 비꼬기와 냉소와 동그란 세탁기-우주선-비행기 창문과 엑스레이 기계. 전화벨, 다리미판, 금붕어, 어항, 거울과 안경. 무중력과 발버둥치기, 아름다운 것에 가닿으려는 열망, 앞에 나서는 것의 어려움, 갈라진 관계, 스스로 끝내는 절단된 생, 야속하게 흘러버린 시간, 기다림, 불시착했을 때 그때서야 멀리 보이는 것들. 이 모든 일상과 시. 달은 지구의 거울이다. 나는 우주를 너무 사랑해서 이렇게 적막하고 외로운 것이다. 언젠가는 캐나다에 갈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