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마지막 날 쓴 글
나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한다. 사람과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우리가 만나 나누는 대화의 결과가 궁금하다.
그리고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람들과 모여 춤을 추는 시간이다. 그 어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온전히 나로 음악에 몸을 맞길 때, 상대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몸을 맞길 때 나는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펼쳐질 때 나는 심장이 뜨겁게 반응한다.
사람과 마주보고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싶은 나는 내가 참 좋아하는 나이다.
그런데 내가 참 미워하던 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을 무서워하고, 긴장하고, 불안해하고, 물건을 깨고, 물을 엎지르고, 사고를 치는 나였다. 그냥 좀 잘 하고, 멋지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나만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을 그렇게도 좋아하면서 왜 그렇게도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는지 도무지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보다 더 사람을 불편히 대하는 남편은 나에게 연구대상이었다. '대체 왜 사람과 저렇게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까?'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데 왜 저 사람이 나보다 더 편안해보이지?'하는 의구심이 내 마음에 늘 있었다.
이번에 미국행을 결정한 건 단순히 일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내가 나를 이해하고 싶었고, 정말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가정을 만들어 아이에게 멋진 삶을 물려주고 싶었다. 상담을 공부하다보니 '7세 이전의 경험이 아이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라는 말이 내 귀에 꽂혔다. 나의 7세 이전이 너무나도 힘든 일이 많았기에, 그 말이 더 각인되었다. 아이가 5살이 될 때부터 내 마음에는 조바심이 올라왔다. '이제 2년 남았는데, 내가 계속 이렇게 불안한 상태이면 어쩌지?' 그러며 나에게 강해지라고 주문했다. '정신차려 지혜야. 이제 2년 남았어. 너가 지금 아이에게 잘 하지 않으면 아이는 평생 너처럼 힘들 수 있어. 그러니 견뎌.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 일도, 관계도, 육아도 모두 잘 해내란 말이야. 너는 그래야 해.' 나에게 무수히도 많이 주문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나를 딱딱하게 만들었다.
그럴 수록 내 마음에 새록 새록 피어오르는 꿈. '불안을 없애거나 회피하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로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온전한 나로 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과거보다 많이 강해지고, 단단해진 내가 보였지만 무언가가 비어있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이것을 넘어서고자, 정말 아이에게 사랑받고 사랑한 기억을 남겨주고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영어도 할 줄 모르고, 돈도 충분치 않았다. 정말 제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나와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렇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이유는
1. 자기를 미워하던 삶을 넘어 자기를 사랑하는 삶을 살며, Best of me로 살도록 상담사들을 양성하는 교수님에게 실제로 배우고 싶었고
2. 이혼을 넘어 부부가 다시 사랑하도록 세계적으로 돕고 있는 하빌 & 헬렌 박사님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강의를 현장에서 들으며 배우고 싶었고,
3.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 미국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1, 2번의 이유만으로는 망설일 조건이 많았지만 나의 친구들이 먼저 가 있는 미국땅에 나는 달려가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와 어느덧 27일이 지났다. 그리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