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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Apr 09. 2022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

삶을 위로하는 말과 삶을 바꿔놓는 생각.

살아가다 보면 삶의 전환점이라고 생각되는 경험들을 할 때가 있다. 사유의 깊이를 더하게 되는 만남을 조우하거나 관계의 확장 혹은 단절을 경험하거나 가치관을 송두리째 변화시킬만한 사건들을 겪게 될 때. 그럴 때 우리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그건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구별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오늘이 당연하지 않았던 순간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당연히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당신이 그곳에 없을 때,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당연한 것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진다.




어느 날엔가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밥을 다 먹은 아이가 본인의 그릇을 치우며 말했다. “엄마, 진짜 맛있었어. 고맙습니다.” 아이가 자주 하는 인사였다. 밥을 먹는 중간에도 “너무 맛있어” “엄마 최고”를 외치는 아이들이기에 아이들의 맛있다는 표현은 익숙했다. 그런데 유독 그날은 아이의 고맙다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고맙다고 하는 말이 오늘따라 엄청 감동인데? 맛있게 먹어서 엄마도 기분 좋아”  나의 말에 아이가 답했다. “엄마, 엄마가 밥을 해주는 건 당연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고마워. 내가 내 그릇을 치우는 건 당연한 거고. 당연하지 않은 걸 받으면 고마운 마음이 생겨”


나조차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베풀었던 호의를 상대가 그건 당연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할 때 그 마음은 나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얄팍한 위로가 아니라 충만한 위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받은 위로는 잔잔했던 나의 마음에 깊게 뿌리내려 나를 뻗어나가게 하는 힘이 된다.






당연한 것은 많다. 아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많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었고 나의 엄마의 희생은 늘 당연했으며 이 땅에서 나의 자유도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누리는 나의 행복, 나를 믿는 믿음, 당신에게 받는 사랑도 당연했다.


당연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내가 이룬 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었고 순한 아이는 순한 유전자의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 나의 육아방식이 옳았던 것이었으며 나의 건강한 몸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매일 나를 돌보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었다. 모든 게 내 노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라는 변수를 만나 당연하지 않은 일상이 되었다. 나의 엄마는 자식을 위해 꿈을 접고 희생을 선택했던 것이었고 이 땅에서 누리는 나의 자유는 선대에 많은 분들의 희생과 염원으로 이룬 것이었으며 지금 나의 행복을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필요하다. 내가 나를 믿으며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나의 부모님이 나를 그렇게 믿어주셨기 때문이었고 당신에게 받는 사랑은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내가 노력해서 얻었던 성취들은 때론 무수히 많은 변수를 비켜간,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고 나의 건강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어느 순간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


때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여성으로서 받는 위협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이 낳은 결과라는 것, 아이들이 받는 차별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무지하고 이기적인 어른들의 힘의 남용이라는 것, 혐오와 배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환대와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것. 이 깨달음 위해서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들일 용기가 필요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감사를 배우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겸손을 배운다. 교과서에서 글자로 배운, 미덕의 결과로 산출되는 감사와 겸손이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에 피부로 경험되는 감사와 겸손.   


내 삶에서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때 삶은 한층 더 깊어지고 환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누린 것들 중에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은 것을 구별해본다. 내 삶을 더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서.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를 기억하기 위해서.  


*사진은 이번 주에 우연히 만난 봄. 이 봄도 당연한 것은 아니겠지요. 당연하지 않은 봄날을 누리는 날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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