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커트는 사춘기 육아와 닮아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커트와 사춘기 육아의 목표는 무엇일까? (사춘기 육아의 목표라니요. 목표라는 걸 세울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가요 물어보신다면 그 분함과 어이없음을 한 번만 꾹 참고 글을 읽어보시라 권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거대하고 무거운 목표가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커트의 목표는 바로 네트를 넘기는 것이다. 상대를 제압하거나, 부드럽게 회유하는 듯 넘어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파고들거나, 상대가 실소를 터트릴 만큼 짧은 공으로 한 점을 거저먹는 것. 이 모든 것은 커트의 목표가 아니다. 커트의 목표는 그저 네트를 넘기는 것이다.
커트는 나에게 넘어온 공으로 점수를 얻어내겠다는 포부로는 칠 수 없다.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돌면서 나에게 돌진해오는 공을 일단은 받아 네트를 넘기는 것. 커트의 작고 소박한 목표다.
그렇다면 사춘기의 목표는 무엇인가. 네트를 넘기듯 오늘 하루를 잘 넘기는 것이다. 무책임하다고, 육아를 그렇게 단편적으로 좁게 봐라 볼 일이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겠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건지, 나에겐 오늘 내 눈앞에 있는 아이와 오늘을 누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오늘 내 눈앞에 있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오늘 너를 이기려 하지 않고 오늘 너를 굴복시키지 않고, 그렇다고 회유하며 웃게 만들지도 않고 그저 오늘을 잘 넘기는 것. 그것이 사춘기 육아의 목표다.
어쩌면 커트는 가장 겸손한 기술이고 사춘기 아이와 오늘을 넘기는 건 인생과 육아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행위가 아닐까. 흔들흔들 거리는,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너와 나의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오늘을 잘 넘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춘기 육아를 직면할 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목표다. 그렇게 잘 넘긴 하루하루가 모이면 어느새 이 시기가 지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너와 웃으며 공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욕심을 조금 넣어두자. 때론 욕심인지, 교만인지 모를 경계선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조금은 더 여유롭고 겸손하게 오늘을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사춘기 육아에서 가장 필요한 건 겸손이다. 매일 흔들리는 너를 내가 어찌할 수 없겠다 인정하는 겸손, 너를 이기는 양육자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고 믿어주는 양육자가 되어야겠다는 겸손. 너의 인생에서 내가 대신 짊어질 수 있는 건 없으니 나는 너에게 삶을 짊어질 용기와 힘을 북돋아 주는 것뿐이겠구나 인정하는 겸손, 당장 내일의 삶도 불확실한 우리네 인생이니 오늘 너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오늘을 잘 보내야겠다는 겸손. 이 모든 겸손이 사춘기 육아를 살게 할 것이고 오늘을 넘기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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