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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Oct 12. 2022

끈기 있게 버텨라


“아니, 왜 공격하지 않고 저렇게 답답하게 경기하는 거야?”


언젠가 탁구 영상을 보다가 내 눈에는 답답하게 주고받기만 하는 것처럼 보여 남편에게 물었다.(훗날 그때 그렇게 끊임없이 계속 받아쳐낼 수 있는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나의 망언을 생각하며 한없이 작아졌다.) 그 영상은 바로 커트로 이어지는 경기였는데 커트로 이어지는 경기는 탁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정말이지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경기다. 공이 빠르게 가는 것 같지도 않은데 공격은 왜 하지 못하는가, 반대로 이 정도 공이면 받기 힘들 것 같은데 다시 또 쳐내는가. 이런 생각을 5번쯤 하면 마무리되는 경기가 커트 경기다.


앞의 두 장에서 커트를 시작하게 하는 힘과 커트의 목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커트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는 바로 커트 경기에서 이기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커트로 시작한 공은 공의 회전을 바꾸는 기술을 쓰지 않는 이상 계속 커트로 주고 커트로 받아친다. 계속 커트, 커트, 커트. 커트.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고 네트를 넘기는 것에만 집중하며 커트로 경기를 지속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이 경기는 커트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이 승부의 결정타는 과연 무엇일까.


바로 끝까지 끈기 있게 버티는 것이다. 버티는 것이 결정타라니? 이 어이없는 공식이 커트에서 성립된다. 결국 버티는 쪽이 이기고 버티지 못하는 쪽이 진다. 


사춘기 육아의 승리자는 누구일까. 그 시절을 온전히 버텨낸 자이다. 때론 눈물짓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쌓아온 아이와 나의 시간이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것 같고, 문 닫힌 아이의 방처럼 아이의 마음도 닫혀버린 것 같을 때도 있다. 또한 아이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모진 말들이 아이의 진심인 것 같기도 하다. (진심일 수도 있다. 아이의 모든 말을 진심은 아니겠지 하고 넘어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이럴 때마다 아이에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그래! 끝이야! 끝! 너랑 나랑 연 끊자!”


혹은 이런 말도.


“너 나랑 한판 하겠다는 거야?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그런 말이 나의 목구멍을 넘어 입을 통해 나오려 할 때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자. 내가 끝내는 순간 경기는 끝난다. 버티지 못하는 순간 사춘기 육아는 끝난다. 


커트로 이어지는 경기에선 섣불리 공격하면 아웃이다. 돌면서 오는 공은 언제나 나의 예상을 뒤엎고 마지막 한방이라고 생각하며 공격하면 그 공은 공격 공이 아니라 탁구대를 넘어 저 멀리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사춘기 육아도 마찬가지. 답답하게 받아치는 대화가, 짜증으로 이어지는 삶의 패턴이, 닫힌 방문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방을 노리고 싶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다. 뭘 해서라도 공기의 흐름을 바꿔놓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하지만 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마음을 따라가다간 불쑥불쑥 이 아니라 불+불의 위력을 가진 전쟁이 일어나고 이 전쟁의 최후는 ‘the end’ 다.


물론 버티는 하루하루가 매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커트 공 일지라도, 그 공이 그 공 같고, 이 공이 이 공 같아 보여도 커트 공마다 속도도, 방향도 조금씩 달라져 온다. 


사춘기 육아도 그렇다. 매일 같은 하루를 넘기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그 속에서도 기쁨이 있고 슬픔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환희가 있을 것이다. 아이의 눈물이 있을 것이고 웃음이 있을 것이다. 아이가 던지는 공의 방향이 나를 비껴가는 날도 있지만 어느 날은 엄마를 향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매일 매시간 조금씩 다른 아이와 함께 오늘 하루를 넘겨보자. 때론 함께 웃으며, 때론 함께 울며, 끈기 있게 버텨보자. 사춘기 육아의 목표는 오늘을 넘기는 것. 이 목표에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넘기고 버티다 보면 끝내는 마지막에 웃는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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