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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Oct 18. 2022

두 번은 없다.


스매시를 배우며 깨달은 진리는 두 번은 없다는 것. 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은 같은 모습으로는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순간은 유일무이한 순간이다.


2시간마다 깨어 울던 아이가 어느 순간 누워서 방긋방긋 웃어주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피골이 상접하고 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치려 하는 순간 아이가 내 눈을 마주치고 웃는다. 그 순간 우리는 그 모습을 찍으려 핸드폰을 들어 카메라를 켠다. 하지만 그 순간은 지나갔다. 남기려는 순간 그 순간은 사라진다. ‘아, 왜 찍으려는데 다시 안 웃어주는 거야’ 하며 속상함을 내뱉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경험. 아마도 육아의 긴 터널을 지난 양육자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건 당연한 이치다. 그 모습 그대로 웃어주는 아이는 그 순간에 존재할  뿐이고 그 순간의 아이는 금방 사라지고 지나간다. 그러니 유일무이한 지금 이 순간을 누려야 한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순간이 유일한 순간이고 아이와 나의 결정적인 순간은 한 번뿐이다.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집중해서 나에게 던지는 아이의 공을 쳐내야 한다. ‘결정적이다’라는 건 ‘확실한 것, 중요한 것’. 아이가 던지는 모든 신호에 확신할 수는 없다. 덜 중요한 공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양육자는 안다. 지금 이 순간이 아이의 삶과 나의 삶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순간이라는 걸. 그 순간은 같은 모습으로 다시 오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은 확실하고 중요한 순간을 알아차린 사람에게 온다.


한 번뿐인 그 순간을 위해 때로는 나의 중심을 무너뜨려 공에 내 몸을 싣는다. 나를 온전히 내던지는 경험은 나를 무너뜨림으로 나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인생은 한방으로 결정되지 않지만 때론 결정타 한방이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승부를 판가름하는 타격이거나 내가 하는 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나 사건을 만나게 될 경우 우리는 중심을 무너뜨린다. 내 삶을 지탱하는 중심은 때론 고집이 되고 아집이 되기도 하는데 중심과 고집의 한 끗 차이를 판가름하는 건 그 중심을 무너뜨릴 용기가 있는 지다. 이 용기는 또 다른 시작을 시작하게 한다. 


육아에서도 그렇다. 아이에게 보내는 한 방은 공격이라기보다 결정타다. 즐거움의 결정타일 수도 있고 몰입의 결정타일 수도 있다. 아이와의 관계의 결정 타일 수도 있고 성장의 결정 타일 수도 있다. 아이의 놀이와 유희, 성장, 몰입의 주체는 아이이기에 모든 방향과 속도를 어른이 조절하지 않는다. 아이 스스로 조절하며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론 양육자의 결정타가 아이의 시작을 시작하도록 격려하는 힘이 된다. 그 결정타는 나의 삶을 바꾸기도 하지만 아이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아이에게 어떤 결정타를 보낼 것인가.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내는 오늘 모든 순간은 결정적인 순간이고 그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오늘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에 집중해 살아낼 수밖에 없다. 오늘에 힘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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