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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Oct 14. 2022

공이 높으면 팔도 높이

탁구에서 보는 재미와 치는 희열이 가장 큰 기술은 아마 스매시가 아닐까. 스매시는 높이 떠서 오는 공을 빠르고 세게 쳐내 공격하는 기술로 속도는 물론 힘마저 강하다. 보는 사람도 치는 사람도 속 시원하게 만드는 기술. (물론 공격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기술로 스윙하는 자세만 봐도 숨이 탁! 하고 막힌다.)


스매시를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다가오는 공의 높이와 그 공을 쳐낼 라켓의 높이를 맞추는 것. 높이를 맞춰야만 라켓에 싣는 무게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에서 스매시와 같은 강한 한 방을 기대한다면 아이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맞춰야 한다. 육아의 결정적인 순간을 만나기 위해서는 아이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맞춰야 하고 몰입의 순간에 라켓을 쳐내야 한다. 


이 결정적인 순간을 직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기다림’이다. 높이 떠오른 공과 라켓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다가오는 공의 높이와 속도에 집중하며 공이 정점에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린다. 떠오르는 공을 급한 마음에 일찍 쳐내면 실패. 공의 높이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라켓의 높이를 같이 높여 응축된 힘으로 공을 쳐내야 한다.


섣부른 판단과 이른 스윙으로 한방의 기회를 놓치게 만드는 것처럼 양육자의 조바심은 때론 아이와의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게 만든다. 나는 준비가 되었는데?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하는 양육자의 조바심으로 아이와 눈높이도 맞추지 않은 채 관계 라켓을 휘두르면 아직 올라오지도 않은 아이의 공 위에서 내 손만 휘둘릴 뿐이다.


아이에게 올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지금 이 순간이 맞는지 아닌지 유심히, 면밀하게 관찰한다. 아이가 쳐내는 대화의 공이, 놀이의 공이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지, 얼마큼 올라와 있는지를 관찰하며 기다린다. 아이는 차분한 대화가 필요해 낮은 공을 보냈는데 나는 열정의 에너지로 공을 쳐내면 아이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네트에 걸릴 것이고 때론 자신의 마음을 감추고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는 공을 보냈는데 방향을 감지하지 못하고 그 공을 받아쳐내면 탁구대(아이의 심리 수용 공간)를 벗어날 것이다. 


아이와 나의 게임에서 중요한 건 높이를 맞추는 것. 높이를 맞추는 건 시선을 맞추는 것이기도 하고 마음의 높이를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감정의 깊이와 넓이를 맞추는 것이기도 하고 표현의 높이를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의 공은 아이의 것이기에 양육자가 아이가 던지는 공의 방향을 정할 수 없다. 라켓을 아이에게 쥐어주는 것은 아이의 삶을 온전히 아이에게 쥐어주는 것이고 아이가 라켓을 휘두를 수 있게 기다리는 것은 아이가 아이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내는 것을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아이가 던지는 공을 기다려주는 것은 아이가 수시로 던지는 공을 받아주겠다는 사랑의 의지이고 표현이다. 그러니 그 마음으로 아이의 공을 기다리자. 기다리는 자만이, 그래서 정확히 높이를 맞추는 자만이 강한 한 방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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