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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혜미 Oct 08. 2022

거꾸로 도는 공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탁구 기술은 단연 “커트”다. 평범하지 않게 오는 공을 받아내는 뿌듯함이란. 하지만 이 뿌듯함을 채 다 느끼기도 전에 경기를 해보면 나를 제일 답답하게 하는 것도 커트다. 


친절한 (남편) 코치님이 “이건 커트 공이야” 하고 알려주며 보내는 커트 공을 받아내는 건 재밌더니 경기에서 커트로 바뀐 공은 도무지 이게 커트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다. 경기 영상을 보면 도움이 될까 싶어 영상을 봐도 알 수가 없다. 보다 보면 빙빙 도는 게 공인지 나인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멀리서 보는 사람은 모른다. 공이 돌며 오고 있는지 직선으로 오고 있는지. 그럼 대체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공을 뚫어지게 보는 눈을 가진 상대가, 그리고 공에 라켓에 대보는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아. 커트 구나. 


커트는 사춘기 아이 육아와 많은 면에서 닮아있다. 사춘기 아이이던 커트 공이던 대봐야 안다. 멀리서 보면 커트 공이나 아닌 공이나 비슷하고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나 아닌 아이나 비슷하다. 


커트를 처음 배울 땐 라켓에 맞은 공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니 라켓을 공에 대는 게 무서웠다. 분명 이 각도로 라켓을 대면 이렇게 날아가겠지? 하는 모든 예상을 뒤엎는 것. 그게 바로 커트였다.


그렇다고 라켓을 대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경기를 지속할 수 없다. 어쩌면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시작은 '부딪힘'일지 모른다. 모든 관계는 너에게 나를 부딪혀 볼 때 시작된다. 부딪힘이 만남 그 자체이며, 만남은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하게 한다. 


사춘기 아이들은 정말이지 양육자마저도 피하고 싶은 존재다. 정확히 말하면 내 아이가 사춘기에 입문했다는 그 사실을 피하고 싶은 거다. 그래서 확인해보지 않는다. 아이에게 나를 대보지 않는다. 멀리서 지켜보며 왜 이 아이는 삐뚤게 얘기하는 거야? 왜 불평만 하는 거야?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불평하며 판단한다. 하지만 사춘기는 커트 공처럼 멀리서 지켜보면 이게 사춘기인지, 단순한 아이의 불만 인지, 반항 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양육자여 용기를 내보자. 용기를 내어 나를 아이에게 대보자. 대보다 보면 답이 서서히 보인다. 커트도 처음에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고 라켓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지만 (그 순간이 좀 많다는 게 함정이지만) 반복해서 대보다 보면 이럴 땐 이렇게 공이 날아가는구나 깨닫는 순간이 오고 다양한 요령이 생기면서 쉬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재밌는 순간도 온다.(믿기 힘들겠지만 정말 온다. 믿어보시라.)


사춘기 육아도 나를 너에게 대보다 보면, 부딪히다 보면 라켓에 맞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튕겨 나는 너를 이해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매번 그럴 수는 없겠지만 그게 또 재밌는 순간도 오지 않을까. 아니, 끝까지 재밌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커트 때문에 탁구를 포기할 수 없듯 사춘기 때문에 육아도 포기할 수 없는 걸. 그러니 오늘도 너에게 나를 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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