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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body Dec 17. 2019

독일 와인 여행 10

에버바흐 수도원


8일 차


와인 산지에서의 마지막 날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엘트빌에 있는 에버바흐 수도원에서 보냈다. 지금은 수도원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라인가우 음악제 등 공연장으로, 그리고 기업 행사 장소로도 대여되고 있다. 과거에 방앗간이었던 건물은 지금 호텔이고 우리는 그곳에서 묵었다.



숙소 라운지에는 과거 수도원에서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군데군데 전시되어있고, 분위기도 무척 조용하다. 방은 유럽 기준으로는 넓은 편이었고 창밖으로 정원이 보여 운치 있었다.

숙소 바로 옆 장미 정원에는 9월 초인데도 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절정이 약간 지나 생기와 꽃잎을 약간 잃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예뻤다.

수도원에서 키우는 라마

부지 안에는 상당한 규모의 포도밭이 있고 와인도 유명하다. 에버바흐 수도원의 포도밭은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였고, 캐비넷이라는 와인 등급도 여기에서 탄생했다. 현재 포도밭은 대부분 헤세 주 정부 소유다. 하지만 공기업이라고 해서 와인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라인가우 스타일 리슬링이 유명할 뿐만 아니라 우아하고 스파이시한 피노 누아가 매우 뛰어나다. 와인뿐 아니라 수도원에서 만든 잼, 겨자 등과 기념품도 살 수 있었다.

수도원 레스토랑도 평이 좋아 서울에서부터 테라스 좌석을 예약해놓았다. 그런데 산책을 하다 보니 악기 든 사람들이 본당으로 들어가고 오케스트라와 합창 소리가 달렸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날 저녁에 콘서트가 있다고 해서 급히 검색을 했다. 5시 반부터 입구에서 표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안내에 급히 저녁 예약을 바꿔서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달려가서 입장권을 샀다.


엘가의 제론티우스의 꿈과 베르디의 레퀴엠 등을 공연했다. 연주와 노래가 정말 뛰어나서 언니와 나는 중간중간 눈을 마주치며 행복한 표정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더한 행운이 찾아왔다.


라인가우 음악제의 일부도 아니어서 정보가 없었는데, 처음 들어본 도이치 필하모니 메르크Deutsche Philharmonie Merck라는 오케스트라의 정체가 너무 궁금해서 우리는 나가다가 다시 들어가 관계자 같은 아저씨에게 어떤 오케스트라이길래 이리 멋진 연주를 하냐고 물어봤다.


음악회 관계자가 아니라 수도원 개보수를 맡은 건설회사 직원이었던 그분은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을 뿐 아니라 시간 있다 하니 잠겨 있던 수도원 유물 보관소와 옛날 와인 저장고 등을 구경시켜 주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 도서관 장면을 촬영했던 공간 등 수도원의 보석 같은 공간들을 샅샅이 볼 수 있었다.


장미의 이름 촬영장이었던 공간


독일 여행을 통틀어 가장 행복하고, 또 역사와 예술에 푹 젖어 보냈던 저녁 다음 날 아침에는 숙소 아래층에 있는 조식 식당으로 들어섰다. 사찰의 아침처럼 고요한 식당에 깔끔하고 정성스러운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떠나기 전에 고즈넉한 정원을 한 번 더 산책했다. 그리고 포도밭 투어를 안 한 대신 포도밭에서 사진도 실컷 찍고 에버바흐를 떠나 출발점인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수도사처럼 구도하는 표정을 띤 석상들



모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경사진 라인가우 포도밭
나무가 많은데도 오크톡에 꽃나무를 심은 꽃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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