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하얗게 빛났다. 소리도, 바람도, 색도 모두 사라진 순간. 루니는 물속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듯한 감각에 휩싸이며 눈을 떴다. 달리는 지하철의 차창이 리듬감 있게 흔들리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 아침 햇살이 유리에 번져 잔잔한 물결을 만들었다.
“… 꿈이었나.”
루니가 낮게 중얼거리며 손바닥을 비비니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열차가 멈추고 사람들이 바쁘게 내렸다. 루니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역, 익숙한 풍경, 공기마저 익숙한 이곳에서 루니의 마음속도만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오전 회의에서 루니는 문서를 잘못 제출했다. 실수를 지적받은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평소와 다르게 바로 손을 움직여 다음 행동을 이어갔다.
괜찮아요, 실수할 수도 있죠.
동료 직원의 말에 루니는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가벼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퇴근길에 루니는 어둠을 뚫고 달리는 지하철에 다시 몸을 실었다. 늘 휴대폰 속 짧은 영상만 들여다보며 흘려보내던 시간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처음으로 휴대폰 대신 펜과 노트를 들었다. 가방에서 꺼낸 노트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루니 — 불완전함을 향한 모험》
루니의 손끝이 약간 떨렸다. 이 떨림은 불안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신호 같았다. 창밖 불빛 사이로 토끼 귀 하나가 스치듯 흔들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불완전함이 널 움직이게 할 거야.”
루니는 고개를 숙여 미소 지었다.
“응, 이제는 알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집에 도착하자마자 루니는 불을 켜고 노트를 펼쳤다. 펜촉이 종이 위를 스쳤다. 글씨는 삐뚤고 서툴렀지만 거기엔 분명히 루니의 온기가 있었다. 완벽을 좇느라 잃어버린 건 언제나 나였다. 불완전함 속에서야 비로소 나를 다시 만났다. 완벽주의의 세계는 끝났지만, 루니가 '이루니'로 되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루니는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창밖엔 바람이 흘렀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낡은 토끼 인형 코코의 귀가 살짝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