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피하고 싶은데 자꾸 끌린다.

민과장의 엇갈리는 두 마음

by 미미유

까톡—


거실의 고요함을 깨는 알림 소리에 민과장의 온몸이 순간 움찔해졌다. 방 안에서 재우던 채린이가 깰까봐 서둘러 휴대폰 소음을 무음으로 바꾼다. 어렵게 재운 낮잠이라 숨소리마저 조심스럽다.


민과장이 회사에 다닐 때 카톡은 거의 전적으로 업무용 채널이었다. 보고, 지시, 일정, 급한 수정 요청.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시지가 도착했고 그녀는 그 모든 알림을 ‘일의 연장’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다.


프로필 사진 하나 바꾸는 것조차 신중했다. 사진에 여행지라도 보이면 팀장은 “어디야?” “언제 다녀왔어?” 하고 캐물었다. 불필요한 관심과 대화를 피하고 싶었던 민과장은 늘 무난한 바다 풍경을 걸어뒀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 없는, 불필요한 감정이 실리지 않은 사진이었다.


육아휴직 후, 시끄럽던 카톡은 놀라울 만큼 조용해졌다. 알림은 거의 오지 않았고, 오히려 그 적막이 좋으면서도 아쉬울 때가 있었다. 그런데 아파트 커뮤니티 단체톡방에 들어온 뒤로는 다시 불난 호떡집처럼 휴대폰 알림음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첫 모임 이후, 다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재우고 난 뒤 쌓인 톡을 훑어보는 일은
어느새 민과장의 조용한 일과가 되었다.


‘꿈마을 3차 용띠맘 단톡방.’ 그 옆에 빨간 숫자 300+.

예전의 민과장이라면 한 번에 무시하고 지웠을 숫자다. 필터링할 가치도 없는 정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방만큼은 쉽게 넘기지 못하겠다.


‘무슨 대화가 오가고 있을까?’


단톡방의 내용들은 볼때마다 민괴장을 괴롭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안보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그 불안함 때문에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용띠맘 단톡방이다


[은지맘] 오늘 이유식 닭가슴살 간 어떻게 하세요?

[민준맘] 조리는 어떻게 하세요? 삶으면 퍽퍽해서 애가 잘 안 먹더라고요~

[유나맘] 저는 일주일치 이유식 재료 삶아서 소분했어요.

[소율맘] 와 다들 부지런하시다 ㅠ 전 그냥 시판팩 써요♥️


민과장은 스크롤을 내리다 멈췄다. 소율맘이 남긴 ‘시판팩 써요’라는 문장 뒤 하트 이모티콘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이유식 흑백 요리사에라도 출전한듯 저마다 이유식 레시피 자랑하는 대화 속에 시판팩 쓴다는 말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나만 사먹이는 게 아니었구나. 그래. 가끔인데 뭐 어때. 괜찮을거야.'


민과장이 안심하려던 찰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바로 아린맘이 올린 정갈한 이유식 트레이와 작은 유리병이 가지런히 놓인 사진이다.

[아린맘] 오늘 메뉴: 단호박죽 + 두부시금치퓨레“

하트 27개.

댓글 14개.


댓글 중에는 지오맘의 “역시 아린맘님~존경합니다.”도 있었다.


‘후우..괜히 봤어.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


민과장은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엎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하늘하늘 흔들리던 마음이 아린맘 사진 한 장에 폭주하기 시작했다. 민과장은 휴대폰을 다시 열고 자료 뒤지듯 이유식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들 공부하고, 직접 만들어 먹인다는데 민과장도 그들처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 사이트에서 이유식 책 목록을 살피고 있을 때, 전체 멤버를 호출한 메세지 하나가 열렸다.


[지오맘] 이번주 금요일 오후2시. 감정 모임. 커뮤니티 소회의실에서 만나요.



민과장은 말없이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다시 나가지 않겠다고 혼자만 조용히 마음 먹었는데 '감정 모임'이라는 정체가 궁금해졌다. 손끝이 자꾸 멈칫거린다. ‘좋아요’ 버튼을 누를까 말까.


'아린맘? 그 여자도 나오겠지?'


첫 만남에서부터 이유모를 불편감을 안겨주던 아린맘의 모습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뒤따라서 따스한 지오맘의 미소가 떠오른다. 지오맘이 주최하는 모임이라니 용기내서 다시 나가보고 싶다. 휴대폰 자판을 이리저리 만지던 민과장은 한 마디를 쓰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민과장] 좋아요. 저도 갈게요.



다음 날, 커뮤니티 소회의실.


민과장을 비롯해 지오맘의 감정 모임에 관심을 보인 엄마들이 회의실 테이블 주변에 둘러 앉아있다. 맞은 편에는 아린맘이 단정한 옷 매무새로 앉아있다. 서로 어색하게 눈빛 교환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낯선 실루엣, 굵은 음색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엄마들의 시선이 일제히 새로운 남자에게로 항했다.


"안녕하세요. 평소 단톡방 즐겨보다가 감정 모임이 궁금해 왔어요. 이준우 입니다. 6개월 땡구 아빠예요."


순간, 건조해졌던 민과장의 눈이 촉촉하게 커졌다. 휴직전 같은 팀에 있던 민과장의 후배 아니던가.

"어? 이대리?"


준우도 놀란듯 커다랗게 눈을 뜨고 웃었다.


"과장님? 와, 여기서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남자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웃었다. 옆자리 엄마들이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육아 모임에 남자?’라는 표정이었다. 엄마들이 절대다수인 육아 모임에 아빠가 나타난 건 그 자체가 이슈였다.


“혹시 너도 휴직이야?”


민과장 옆 자리에 앉는 준우에게 속삭이듯 낮게 묻자 준우는 활짝 웃으며 목소리 톤을 맞춰 답한다.


“네, 이번에 아내랑 바통 터치했어요."


맞은 편에서 준우와 민과장을 번갈아 스캔하던 아린맘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요즘 남자 육아휴직자 많다던데, 멋지네요."

"멋지긴요, 업무보다 육아가 훨~씬 어렵네요. 일 목표가 울음 횟수라니까요.”


엄마들이 큭큭 웃었다. 민과장도 오랜만에 목에서 자연스러운 웃음이 흘렀다. 준우의 존재는 어쩐지 편안했다. 예전의 ‘일하는 민과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어서 그랬다.


그 사이 지오맘이 조용히 모임에 필요한 종이와 펜을 나눠주며 모임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감정 모임 첫 시간이에요. 부모 마음이 편해야 아이도 안정되니까요.
부담 갖지 말고, 오로지 자기 마음만 천천히 들여다 보기로 해요.”


종이와 펜을 받아든 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흐름을 이어갔다.


“와, 이런 모임 좋네요. 저도 요즘 감정기복 장난 아니거든요.”


감정을 들여다 보는 것.

그 말이 민과장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게 가능할까? 나는 내 감정을 잘 모르는데. 괜히 나왔나봐.'


민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펜을 꽉 쥐었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부모로서 어떻게 잘해내야 할까’로 혼란스러워졌다. 어두워진 민과장과 대조적으로 지오맘은 한층 밝아진 표정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그럼, 우리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요?”


이 말이 끝나자, 회의실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뀐다. 기대와 불안, 의욕과 주저함이 뒤섞여 있다. 그 순간, 지오맘이 가방에서 꺼내 놓는 카드의 글자가 민과장 시야에 ‘탁’하고 들어왔다. 카드 위에는 민과장이 제일 두려워하는 단어가 또렷하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2화"여긴 회사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