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3
오늘 아침 마신 커피는 에티오피아 파피초(Ethiopia G1(N) Faficho). 그런데 이 커피 왠지 특별하다. 커피를 마시고 몸에 박하향이 퍼지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카페 서래수에 가면 대체로 “아무거나 알아서 주세요”를 주문하는 것은 물론 내가 마신 커피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묻는 경우도 많지 않다. 대체로 다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파피초는 달랐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기운이 쫙 내려가는 기분이 들면서 확 깨이는 느낌에 “어? 이거 무슨 커피예요?”라고 내가 먼저 물었던 것이다.
에티오피아 파피초를 처음 마셨던 날은, 새로 나온 내 책 <메타버스 스쿨 혁명>의 독자로 처음 만난 분과 대화에 난항을 겪고 있던 차였다. 세계관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의 문제였다고 해야 할까? 관점의 차이였다고 해야 할까?
Yes와 No의 간극을 이해할 수 없는 혼선이 반복되는 대화 과정에서 나는 많이 지쳐있었음은 물론 무척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서래수 단골손님인 듯한 노신사가 이마에 핏줄을 세우시며 목소리 크기를 제지할 정도였으니 나의 날카로움이 극에 달했던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아니, 나의 날카로움이 아니라 우매함이라고 하는 것이 더 잘 맞는 표현일 것 같다.
의사를 소통하다는 것이 사실 무모함이지 않던가? 우린 같은 Yes와 No라 해도 상대방과 똑같은 사인(기호)과 언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Yes와 No의 기호를 그때그때 다르게 말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니 상대와 소통하고 혼연일체가 된다는 감각 자체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군다나 처음 만난 사람을 마치 학생처럼 가르치고 설득시키려는 나의 우매함이라니......
그런 한심한 내게 화가 나기 시작한 위기의 순간에 에티오피아 파피초가 두 번째 커피로 왔고, 결정적인 순간에 마신 파피초 한 모금이 바로 신의 한 수였다는 것이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쫙 내려 훑으며 목을 타고 위를 지나 대장과 소장의 길을 유유히 흐르는 커피의 강이 내 신경의 바다를 온통 평화의 바다로 바꿔놓는 신기 방통의 역사적 순간이라니......
사실 내가 우매함을 내려놓고 컴다운한 것은 커피의 효능보다 핏발 선 노신사의 눈초리 효능이 더 컸음은 진실이다. 하지만 어찌 에티오피아 파피초의 마술을 잊을 수 있겠는가? 눈보라 치던 한라산 정상 백록담에서 목구멍이 뜨겁게 꼴깍 넘어가던 로열 샬루트의 마술처럼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매직이었다. 파피초 원두가 유독 단단하던데, 어쩌면 그 단단한 바디에 담긴 해발 고도 2200에서 견딘 모진 풍랑의 마술 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는 오늘 아침 에티오피아 파피초를 내려 마시며 온 몸 가득 채워지는 박하 향을 느낀다. 어쩌면 (N)으로 표기되는 내추럴 자연건조방식 (Natural/ Dry Processing)으로 가공 생산된 원두의 특징인지도 모르겠다.
한 모금 더 마시자 페퍼민트 오일을 떨어트린 욕조에 들어가는 순간처럼 화한 기운이 다시 내 몸 안의 리듬을 단정하게 정리시키며 에티오피아 파피초 커피의 향과 에너지로 내 삶은 오늘 다시 따뜻하고 든든한 무엇으로 변형된다. 그냥 감사의 마음이 넘쳐흐른다. 범사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