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4.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케냐 피베리(Kenya Peaberry).
사실 나에게 평일과 휴일은 별로 차이가 없다. 프리랜서라서 시간이 자유롭고 느긋한가?라고 상상한다면 경고! 오히려 프리랜서라서 더욱 이유도 없이 늘 마음이 쫓긴다는 면에서 그렇다. 일요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느긋해지기는커녕 ‘시간 없다’라는 강박이 마음속을 조여 온다. 병일까?라고 생각하다 피식 웃으며 올해는 직장인처럼 생활 패턴을 만들어야겠구나 생각한다.
집에서는 쉬고, 글을 쓰는 스튜디오로 출근해서 쓰고.
주중엔 쓰고, 주말엔 놀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스튜디오를 직장처럼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30년 동안 아침 8시면 거의 반드시 마셨던 수많은 봉지커피들의 달달함이 그리워진다. 오늘 아침 케냐 피베리를 내려 마신 이유다.
케냐 피베리는 평소에 마시던 케냐 AA의 좀 터프한 맛과는 달리 좀 더 친절하다고 해야 할까? 케냐 AA가 달리기를 잘하는 남성 중심의 케냐 사회를 표방하는 맛이라면, 케냐 피베리는 <하얀 마사이>에서 주인공 코리네가 마사이 청년 르케팅가를 처음 본 순간의 달콤하고 로맨틱한 전율과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할까? 결국 전사 마사이 청년의 질투와 의심으로 딸아이를 안고 케냐를 탈출하는 주인공 코리네가 케냐 피베리를 마셨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 커피는 달고 사랑은 쓰다?”
케냐 피베리의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맛이라면 어제 마신 에티오피아 파피초(Ethiopia G1(N) Faficho)처럼 과육을 그대로 말려서 가공하는 내추럴(N) 방식으로 가공하여 과일향과 달콤함이 더욱 배가 되었을 법하지만, 놀랍게도 케냐 피베리 원두는 과육을 모두 제거하는 Washed 가공 방식으로 생산된다. 피베리라는 이름도 원두가 완두콩처럼 생긴 데서 유래하는데, 보통 원두가 체리안에 두쪽씩 들어있는 반면, 피베리 품종은 돌연변이로 원두가 한 개씩 들어있어 둥근 모양이 완두콩 같다 해서 피베리라고 한단다. 커피이름엔 나라 이름+산지 명+등급 또는 조합명이나 농장 명칭이 순서대로 붙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피베리의 경우는 콩 자체의 특이성 때문에 ‘커피의 에센스’라고 불리며 별도 등급으로 따로 취급된다.
진하게 내려서 달디 단 브라우니와 함께 먹어도 피베리 커피 자체의 부드럽고 깔끔한 단맛을 잃지 않는 모양이 어쩌면 부드러운 능선을 펼치는 춘삼월의 산과 같을까? 山不辭土石(산불사토석)이라 했나? 산은 한 줌의 흙일지라도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한 개의 돌이라도 이를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높은 것이란 말처럼 케냐 피베리는 부드럽고 유순한 단맛으로 디저트의 강렬한 단맛 까지도 산처럼 크게 포용한다.
갑자기 나는 피베리 커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아상에 사로잡혀 상대를 공격하고 대립하면서 자신의 삶의 신념과 자신의 스타일을 주장하는 고집불통이 아닌, 상대와 나의 차이를 이해하고 배려함은 물론 상대의 고집과 신념과 아상까지도 품어 포용하는 심지 바른 케냐 피베리 커피의 유순함과 포용성을 닮은 산처럼 높은 경지의 자유인이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