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4

by 김은형

Blue Mountain은 해발 고도 2200m가 넘는 자메이카의 최고봉으로 Blue Mountain 커피의 원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산봉우리에서 수확한 커피 원두를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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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은 원산지의 커피 원두는 대체로 알이 작은 편인데 반해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Jamaica Blue Mountain ) 은 굵고 튼실한 느낌이 드는 원두계의 제왕이랄까? 위풍당당 행진곡이라도 틀고 알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영국 여왕이 즐겨 마신 커피로도 유명할 뿐만 아니라 예멘 모카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귀한 커피로 대접받는다.


그런데 이 커피 톡톡톡 튀는 것이 정말 귀엽다. 나무 원통으로 된 칼리타 핸드밀에 넣고 갈아서 종이 필터에 쏟는데 핸드밀 통에 딱 붙어서 좀체 나오려고 하질 않는다. 고산지역의 커피 원두일수록 밀도가 높다고 하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분쇄된 원두 가루가 입안에서 터지는 톡톡 사탕처럼 이리저리 톡톡 튕겨 다닌다.


우리의 모든 신체 세포에는 두뇌와 같은 지능이 있어서 세포 자체가 뇌처럼 자신의 기능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니 분쇄된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원두가 그 학설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다. 톡톡 튀는 커피를 간신히 달래서 필터에 부어 넣고 끓인 물을 따르자마자 뜨겁다는 듯 원두 가루가 표면에서 톡톡톡 튕기며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블루 마운틴 커피 대 폭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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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로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가 파도에 밀려가듯 방울진 기포 소리를 내며 사그락 사그락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소복이 부풀어 오른다. 이토록 귀엽고 장난스럽고 사랑스러운 커피 드립은 난생처음이다.


어? 커피가 살아있네?


높은 산의 정기를 받아서 일까? 가루가 된 원두조차 생기로 톡톡 튄다. 커피 원두가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완전 장난꾸러기 사내아이가 비 온 웅덩이를 찾아가서 물을 철벅거리는 모습이랄까? 사방에 튄 커피 덕분에 청소가 다소 귀찮지만 커피의 귀여움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데....... 반전! 커피의 맛은 또 다른 기품이 있다. 단정하고 품위 있는 유럽의 백작부인이나 조선시대 정경부인의 차분함 같다고 해야 할까? 시지도 달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지만 커피라는 물성의 특징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맛이다. 속은 튀는데 겉은 차분하고 이지적인 열정이 있다. 그야말로 높고 든든한 산에서 태어난 존재 ‘블루 마운틴’ 커피 그대로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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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마운틴 커피가 더욱 귀해진 배경에는 커피 소비 대국 일본이 있었다. 1854년 미·일화친 조약 이후 서구 문물의 유입이 빨랐던 일본은 한국보다 커피 문화가 거의 100년을 앞서갔다.


교토의 카페 ‘로쿠요사’의 창업주인 미노루와 아내 야에코가 처음 만난 곳이 1946년 만주의 포장마차 커피숍이었다. 당시 종이 필터가 귀해서 속옷으로 필터를 만들어서 까지 핸드드립 커피를 즐겼다니 1946년 당시 일본에서 커피는 하나의 문화이자 삶이 되어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커피일가⌟를 읽으면서 패전 이후 물자도 귀하고 삶도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적의 땅에서 원두를 갈아 아이스 드립 커피를 마시며 삶의 위로와 여유를 찾는 일본인들의 모습 자체가 나에겐 큰 충격이었다.


KakaoTalk_20220119_111744544_09.jpg 닌텐도 동물의 숲의 한 장면... 일본에서의 카페란, 메타버스 그자체다. 코로나 이후 우리 삶에서 카페가 삶의공간이 되엇듯이


일본인들이 조선 식민지 약탈 경제를 기반으로 유럽식 카페 문화를 즐기고 있을 때, 우리는 몸빼 바지에 주린 배와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노예적 삶을 살아가야 했던 역사가 있다. 일본인 커피 값의 반절은 우리 민족의 주머니에서 나간 꼴이다. 일본인의 삶의 여유와 낭만, 지성적인 카페 분위기를 한국인이 만들어준 셈이다.


어쨌든 일본은 세계대전에서 패했으나 다시 1950년 한국전쟁으로 경제 특수를 맞으면서 커피 업자들이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으로 달려가 원두를 독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식품과 음식은 패션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가야 함에는 무지했다. 식품을 하나의 유행과 패션쯤으로 여기는 사고패턴은 우리가 직면한 절체절명의 위기, 지구환경과 식량문제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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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의 반절 이상을 차지하는 먹방과 맛집 소개와 요리 프로그램의 홍수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대 로마의 요리책⌜데 레 코퀴나리아⌟를 떠올리게 만든다. 최고의 식탐미학 서적이라고도 할 만한 이 책은 서로마 제국의 몰락 직전에 쓰인 미식가의 식생활 탐구 기다. 탐식가는 음식의 첫 번째 요소가 생명보존이라는 요점을 놓치고 화려한 맛이란 놀이에 취해 더 이상 뒷받침될 재산이 탕진되자 자살을 선택한다.


음식이 생명을 지키는 양식이 아닌 허세의 도구와 탐착의 대상으로 변환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문명의 쇠락 또한 다르지 않다. 어쩌면 급전환된 디지털 온라인 문명에서의 밀 키트와 배달음식과 인스턴트 음식의 범람은 세기말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역사의 순환을 더 높은 관점에서 조망해 봐야 할 시점임은 물론 작금의 푸드스타일에 대해 성찰이 필요한 순간이다.


커피도 원두의 다양성은 물론 마시는 방법 또한 천차만별이지만, 커피 본연의 맛을 내주는 추출방식과 과유불급의 절제는 동양의 다도에서 추구하는 다인의 자세와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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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커피 잔에 담긴 쓴맛이 커피 농장 노동자에 대한 착취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커피 맛의 차원을 떠나서 구매자에게 자신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약속해주는 공정무역 인증을 시작하였다.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공정무역 커피는 생산 농부를 착취하지 않고 소비자는 자신이 옳은 선택과 소비를 했다는 뿌듯한 기분으로 보상받는 상생구조다. 물론 스타벅스의 공정무역 커피 구입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명분만 앞서는 선택이 아니라 진정 좋은 커피를 공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자신 삶의 리듬에 맞게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지혜와 선택은 소비자인 우리 자신의 몫이다.


다른 커피보다 가격이 좀 비싸다면 두 번 먹을 것을 한 번만 먹더라도 우리가 먹고 마시는 식품은 정직하고 바른 것이어야 한다. 또 달리 생각해보면, 유튜브 구독료나 넷플릭스 구독료는 아낌없이 내면서 커피 농부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저렴하게 이용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심지어 디지털 메타버스 아바타 옷은 구찌로 입히며 비싼 돈을 주고 사면서 왜 진짜 자신의 신체를 위한 좋은 파동의 차 한 잔은 비싸다고 성토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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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환경오염과 기후 문제로 식량위기가 오고, 그로 인해 다시 전쟁이 발발하여 전 인류의 90% 죽는다는 인류문화학자들의 시나리오로 공포에 떨기도 전에 우리는 모두 악성 바이러스나 나노 기술 때문에 죽을 운명에 처해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코로나에 걸려 죽는다는 불안감으로 좀비처럼 무기력하고 분열된 존재로 격리된 채 커피 향 좋은 카페조차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높고 든든한 산에서 태어난,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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