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5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Lago de Atitlán)는 마야 인들에게는 마음을 맑게 하는 영혼의 안식처였다. 쿠바 혁명의 영웅인 체 게바라도 잠시 혁명의 꿈을 접고 수많은 걱정과 지친 영혼을 정화하며 쉬어간 곳이기도 하다.
고대로부터 과테말라의 신전에서 끊이지 않던 기도소리는 아마도 호수를 만든 활화산과 같은 무지막지한 자연에 대한 경외이자 인간이 대자연 앞에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겸손이었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혁명가였던 체 게바라조차도 과테말라 ‘걱정인형’에 삶의 불안과 걱정을 쏟아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 아침은 파카야 화산(Volcán Pacaya)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증기로 뽑아낸 것처럼 새까맣고 진한 과테말라 우에우에 테낭고(Guatemala Hue Hue Tenango) 커피를 마신다.
마치 아티틀란 호수가 찻잔 위에 떠오른 듯 검고 맑은 커피와 불 냄새가 살짝 섞인 장난스럽고 다정함이 아침을 즐겁게 해 준다. 화산재의 비옥한 토양에서 끌어올린 과테말라 커피나무들의 지혜일까?
나는 갑자기 과테말라에 커피 농장 투어를 떠나고 싶어 진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활화산의 느닷없는 재앙도, 오랜 내전의 불행도, 엄마가 만들어준 ‘걱정인형’의 작은 위로와 다독임으로 견뎌온 저 지혜로운 고대 마야의 후손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다.
“Let's together coffee up!”
(말이 되나? 아님 “Let's coffee up! together” 그것도 아님 coffee up! )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외치자
“커피 한잔 마시고 해! 내가 한잔 쏠게!”
불안에 잠 못 드는 아이를 위해 자투리 천으로 인형을 만든 과테말라 엄마들의 다독거림처럼 현대인들에게 “커피 한잔 할래요?”라는 말 또한 ‘걱정인형’ 같은 삶의 위로이며 따뜻함이다.
우리나라 토속신앙 중 ‘허수아비’와 ‘꼭두각시’ 또한 도달할 수 없는 우리의 욕망과 불안을 투사하는 현실을 초월한 상상력의 아바타였다.
온라인 시대의 ‘걱정인형’들은 모두 디지털 메타버스 안에서 화려하고 걱정 하나 없는 멋진 모습으로 불안한 현실을 초월한 듯 ‘멋지고 잘 나가는’ 부캐의 삶을 만들어간다.
아니, 오히려 그곳에 올라타지 못하는 달랑 본캐뿐인 사람들의 불안과 걱정을 양산해낸다. 하지만 디지털 메타버스 안의 멋진 아바타들이야말로 심약한 현실을 초월하고자 몸부림치는 걱정인형 들일지도 모른다.
아티틀란 호수(Lago de Atitlán)에서 잠시 쉬며 혁명을 잊었던 체 게바라처럼 나는 서래수 카페 찻잔 속에 떠오른 검은 호수에서 온갖 망상을 잠재우며 지친 영혼을 정화하기도 하고,
뜻밖에 집으로 도착한 커피의 파동으로 새로운 존재로 변형되었으며 지인들과 수도 없이 많은 커피 호숫가에서 삶의 순간순간을 축하하고 기뻐했다.
내가 카페 서래수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굳이 매일매일 쓰는 이유가 궁금한가?
“커피 한잔 할래요?”
그냥 오늘 잠시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에 함께 모여 앉아 과테말라 아티틀란 호수(Lago de Atitlán)에서 잠시 쉬며 혁명을 잊었던 체 게바라처럼 고요하고 검은 우에우에 테낭고 커피의 작은 호수에서 잠시 쉬어가는 거다. 카페 서래수가 내겐 아티틀란의 호수였던 것이다.
느낌도, 생각도, 의지도, 지식도, 이것이라고 고집할 만한 고정불변의 것은 없다. 관계의 변화에 따라 쉼 없이 변화할 뿐이다. 커피와 카페와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누군가 내게 먼저 커피 한 잔의 호수가 주는 파동만큼의 크기로 걱정인형의 따뜻함을 대신해주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다독거림과 어루만짐의 신비와 삶의 비밀을 나눠 가면 된다. 그리고 부처님 말씀도 잠시 한 줄 되새겨 볼까?
"사리자여, 이 모든 존재의 본질적 세계(차원)에서는 생겨나는 일도 없고,
소멸하는 일도 없으며,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으며,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느리라.”
과테말라의 활화산들은 어쩌면 허공 위로 양으로 솟았던 산이 땅 아래 음으로 솟아 호수가 되기 위해 땅을 불로 요리 중인 것인가 보다.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일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