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콜롬비아 수프리모 후일라

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6

by 김은형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젊고 멋지고 잘난 사람인 것은 대체로 분명하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이 중요한 인물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그렇다. 나에게 커피 한잔이 절실해지는 순간들은 대체로 그런 진실과 직면하며 약화된 자신을 만나게 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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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라서적 관계자와 미팅이 있어 제주도에 가는 길... 밤새 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 콜롬비아 수프리모 후일라(Colombia Supremo Huila)를 내려 마시고 집을 나와 대구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비행 수속을 마치고 3 게이트 대합실에 앉아 시음 기를 쓰려고 노트북을 열다가 간밤에 잠을 설치게 했던 대구 비산동 형제 아이들의 비극과 또다시 직면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스낵바에서 한 시간을 철철 울어보기는 난생처음이다.


아이들이 감당해야 했을 9평 안의 고립된 난감함과 비애가 너무 아파서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스크 안이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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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원겁 즉일념, 일념 즉시 무량겁’이라고 했던가? 한량없는 오랜 겁이 한순간의 생각이고, 한 순간의 생각이 곧 한량없는 시간이라.....

일념 즉시 무량겁.... 교사 재직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수많은 조손가정 아이들의 아픔과 함께 했고, 그들이 어떤 사랑과 어떤 고통 속에서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아팠다. 그리곤 내 안에 내가 끊임없이 소리쳤다.


“ 글 나부랭이만 쓰지 말고, 닥치고, 제발 닥치고 행동해! 애들이 그토록 아프다면서, 교육혁명을 떠들면서 왜 여전히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무량겁 일념을 놓지 못하고 쫑알거리고만 있는 거야? 왜 내 책에 다 써놓았는데, 사람들이 더 많이 읽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고 떠들고만 있는 거야? 왜 할 일을 다 한 듯 책상 앞에 앉아만 있는 거야? 왜 아이들을 돕지 않는 거야?”


무량원겁 즉일념.. 한순간의 생각이 곧 한량없는 시간이라.... 카페 서래수 콜롬비아 수프리모 후일라(Colombia Supremo Huila) 커피를 마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리고 그것의 커피 향과 맛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또 뭔가? 오히려 카페 서래수에서 수많은 커피를 마시며 만난 아이들에 대해 써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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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서래수 커피만큼이나 다양한 아이들을 카페 서래수에서 만나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나눠왔다. 아이들은 부모가 있어도 아프고 없어도 아프다. 내가 다만 아이들을 만나 나눠줄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성장통을 겪는다는 일반론과 그 성장통의 감각이 서로 다르다는 차별성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뿐이다.


어쩌면 우리 삶은 커피가 똑같은 원두 콩에서 한 잔의 색다른 커피로 생산되는 과정과도 같음을 아이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이다.


수많은 커피 원두 중 하나를 선택하고, 어떤 굵기의 가루로 만들지 분쇄의 정도를 정하고 드립퍼와 필터까지 결정된 후 물을 부어 커피를 내렸을 때 같은 원두라도 다른 커피 맛을 내게 된다는 단순한 원리를 이해하면 아이들은 편안해지고 새롭게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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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관리가 까다로운 플란넬(flannel) 필터와 종이 필터는 물론 요즘 유행하고 있는 콘 필터까지 다양하게 써보며 커피 맛을 가늠해보았을 것이다. 그뿐인가? 다양한 드립퍼에 따라 커피 물길을 가늠해보고 그에 따른 커피 맛의 차이까지 예민하다.


하지만 근본 원리는 하나다. 커피 원두에 물을 부어 내려지는 커피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마치 파도가 오고 또 가지만 크게 보면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바닷물일 뿐인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물길이 달라도 모든 강물은 바다로 향하고, 세상 모든 파도는 바닷물의 부분일 뿐인 것이다.


커피도 우리가 그것이 자란 곳이나 맛에 따라 범주를 나눠 차별할 뿐 크게는 단순히 그냥 커피일 뿐인 것처럼 우리 삶의 다양성 또한 인간사라는 하나의 범주로만 규정하면 누구나 다 같아진다. 너와 나를 구분할 것이 없어지는 불이의 경지인 것이다. 다만 나만의 개성 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필터와 드립퍼를 바꿔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 커피를 내리면 된다. 정해진 커피의 정석은 없다. 정해진 물길은 없다. 그때그때 모두 다르다. my wa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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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커피가 없을 때 노랑 봉지 맥심 커피의 탁하고 달짝지근한 혼란과 가벼움은 또 얼마나 맛난가?


내가 카페 서래수에서 아이들을 만나 전하는 라이프코칭은 오로지 서로 다른 물길의 차별성과 다름을 인정하고 커피는 그저 커피일 뿐이라는 단순한 원니스의 세계관을 나누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내가 마시고 싶은 커피가 어떤 것인지 혹은 내 기분이 어떤지에 따라 그에 맞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더 알게 됐다. 필터와 드립퍼를 바꾸어 보는 것이다.


우리 삶의 양태도 마찬가지다. 부모의 라이프스타일과 타자의 라이프스타일은 정답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삶의 필터와 드립퍼를 선택하고 결정해서 자신만의 커피를 내려마실 줄 아는 용기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때 아이들은 더 멋진 제멋대로의 존재 그 자체가 된다.


그 사람이 된다.


자 이제 어떤 필터를 선택해 어떤 커피를 마실지는 온전하게 나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것만큼 젊고 멋지고 잘난 사람인 것은 대체로 분명하지만, 생각하는 것만큼 자신이 중요한 인물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그렇다. 콜롬비아 슈프리모 후일라의 감각이 오늘은 저 넓은 바닷물이 통째로 들어오는 듯 짭짤하다. 나는 오늘 아침도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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