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8
볼리비아에는 우유니 소금 호수만 있는 줄 알았다. 볼리비아 커피에 대한 자료 검색을 하면서 심지어 검색어를 브라질이라고 쓰고 한참을 리서치했다. 그래서 나에게 볼리비아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어쩌면 신세계의 발견과 같다고 해야 할까? 신대륙 발견 후 변화무쌍해진 세계사처럼 카페 서래수라는 신세계를 만난 후 아메리카노와 봉지 커피라는 이분법적 커피의 세계사에 변화무쌍한 커피의 세계가 열렸다. 볼리비아 커피(Bolivia Special) 라는 신대륙을 만난 것도 내가 마시는 커피에 대한 감각에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었다.
어느 날 카페 서래수에 커피를 한잔 마시러 오라는 낯선 분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엉뚱한 사람이 다 있네? 싶었지만 연두색 내부의 ‘서래수’가 대전의 내 단골 카페인 ‘알베로’와 컬러감이 비슷해서 낯설지가 않았다.
4~5개월쯤 지난 뒤 마침 선릉역 문화재청에서 강의가 있어 서울에 간 김에 처음으로 카페 서래수를 찾았고 아주 낯선 접속이 이루어졌다. 우리 삶은 마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아메리카 대륙 사람들과 접속이 이루어지며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가 비롯되었던 것처럼 새로운 접속과 관계 속에 변화무쌍한 생생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
서래수에 당도하니 나를 초대했던 분은 없었고 그가 소개했던 AI스터디 팀들이 노트북을 들고 1층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알고 보니 변화무쌍한 삶의 밸런스를 태극권으로 심신을 수련하면서 비즈니스로 확장해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처음 만난 청년 H가 어느 날 볼리비아 커피를 마시면서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 이 커피는 뭔가 아래로 쭉 내려가는 느낌이 아주 명상적이에요.”
청년 H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커피도 봉지와 아메리카노의 이분법적 세계만이 아닌 더욱 다양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커피 맛의 변화무쌍함 만큼이나 카페 서래수를 드나들며 청년 H의 변화무쌍한 삶을 지켜보았다.
건강을 위해서 처음 태극권을 접하고, 태극권 센터를 중심으로 AI는 물론 디지털 사이언스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유학을 가고, 투자와 경제스터디, 차와 명상과 향기테라피는 물론 서래수에서 바리스타 교육까지 끊임없는 공부를 이어가며 쉬지 않고 환골탈태하는 변화무쌍한 삶의 단면들을 보여줬다.
그뿐 아니라 멋진 태국 여성 P와의 아름다운 연애와 결혼까지 청년 H의 변화무쌍한 삶의 성장에서 원숙한 성년의 발걸음을 보았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자신 앞에 놓이는 삶의 다양함에 저항하지 않고 무엇이든 발을 디디며 세계를 확장해가며 성장하는 모습은 마치 일본의 애니메이션 ‘후세’에서 원숙한 성년이 된 후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볼리비아 커피의 맛 또한 변화무쌍하다. 그것을 마시는 나의 감각과 성장에 따라 뭔가 내려가는 명상적인 느낌이었던 커피 맛도 달라진다. 오늘 마시는 볼리비아 또한 변형된 커피 맛을 보여준다. 1월 3일 날 구입해서 20일이 지난 시점에 마셔보니 처음 마셨을 때의 감각과는 달리 신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창문 너머 하얗게 쏟아져 들어오는 파도의 출렁거리는 바닷물을 살짝 섞어 마시고 싶어 진다. 나는 지금 저 창문 너머 바닷가로 나가고 싶다.
뜨거운 커피를 다시 내려 텀블러에 담아 바닷가로 나선다. 바닷물에 젖은 까만 현무암들이 즐비한 해안을 따라 음악을 들으며 뜨거운 볼리비아 커피를 다시 마신다. 파도가 밀려올 땐 신맛을 잊고, 파도가 밀려갈 땐 커피 맛을 잊는다.
커피도 나도 파도를 따라 바다로 밀려나가고 동이 터오는 변화무쌍한 붉은 하늘빛만 남는다. 어쩌면 커피 맛이란 본디 실체가 없고 다만 변화무쌍한 나의 감각이 있고 변화무쌍한 우리 삶의 순간들이 있고 변화무쌍한 생각들이 다양한 경계의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붉게 동터오는 바다의 망망함 앞에서 마신 커피는 책상 앞에서 글을 쓰며 마셨던 자극적인 신맛의 커피가 아니었다. 청년 H가 카페 서래수에서 볼리비아 커피를 마시면서 했던 말 그대로 ‘이 커피는 뭔가 아래로 쭉 내려가는 느낌이 아주 명상적’인 신선하고 부드러운 커피로 변형되어 있었다. 커피가 달라진 걸까? 내가 달라진 걸까?
파도가 밀려올 땐 신맛을 잊고, 파도가 밀려갈 땐 커피 맛도 잊는다. 나조차 사라진다. 볼리비아 커피를 마신 제주 바다의 아침 또한 변화무쌍한 삶의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간다.
다시 새벽, 집으로 돌아와 어제 새벽 시작한 볼리비아 커피 글을 마무리하며 어제 새벽 보았던 제주 바다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바다를 본다.
더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본다. 어쩌면 세상은 정말 내가 만들어내는 환상임이 분명하다. 내가 쓰는 소설이고 드라마다. 커피 맛의 단짠 또한 내가 쓰는 삶의 소설처럼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하다고 생각하며 오늘 새벽은 파나마 에스메랄다 다이아몬드 마운틴을 마신다.
“이 커피는 뭔가 아래로 쭉 내려가는 느낌이 아주 명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