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9
세상엔 그림자처럼 내려앉아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감으로 깃들어 있는 것들이 있다. 마치 사과를 한 입 깨물고 무심코 파나마 에스메랄다 다이아몬드 마운틴 내추럴(Panama Esmeralda Diamond Mountain (N))을 마신 뒤 커피도 식물이라는 때 늦은 각성에 도달하게 되는 것과 비슷할까?
마치 약간 태운 사과즙을 먹는 것처럼 사과맛과 커피 맛이 분리되지 않고 완벽하게 어울린다.
사과 맛에 커피 맛이 가려진 것일까? 커피 맛에 사과 맛이 가려진 것일까? 어쩌면 오늘 아침의 파나마 에스메랄다 다이아몬드 마운틴은 무위無爲, 무사無事, 무미無味의 자연스럽고 드러나지 않는 꾸밈없는 노자(老子)적 맛일까?
물처럼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처해 모두와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으로 커피를 내리며 서래수를 찾는 손님들이 건강과 사랑과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커피 마스터 김정희 대표도 가끔 파나마 에스메랄다 다이아몬드 마운틴의 노자(老子)적인 맛으로 빛난다.
아마도 그녀는 내게서 세 번쯤 그렇게 빛났던 것 같다. 한 번은 따뜻하고 부드럽게, 또 한 번은 샤프하고 도도하게,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무심하고 자유롭게......
그녀가 빛났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공감과 수용성이다. 그녀는 늘 못 들은 척 물러나 있지만, 단골손님들의 호흡만으로도 예민하게 컨디션까지 읽어내고 그날에 맞는 커피를 내려준다. 꼭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두고 꼭 필요한 만큼의 온기로 그림자처럼 낮지만 뗄 수 없는 긴밀함으로 카페 서래수의 수많은 손님들을 따듯한 커피의 온도로 다독거린다.
사람에게 Hot한 그녀지만 커피에 있어서는 치열하고 민감하기 그지없는 Ice다. 카페 주인장이 아닌 커피 마스터가 되어 말할 때 그녀는 에스메랄다 다이아몬드 마운틴처럼 날카롭고 아름답게 빛난다.
단 한 시간이라도 김정희 마스터의 커피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녀가 왜 자신을 카페 주인이 아닌 ‘커피인’으로 규정하고 있는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커피 마스터 김정희의 커피 철학 앞에선 반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 펜던트도, 디올 북 토트백의 모던함도 명품의 빛을 잃는다. 샤프하고 도도한 ‘커피인’ 마스터 김정희의 아찔한 커피 사랑만이 명품이 된다. 하지만 그녀는 무심하고 자유롭다.
마스터로서 좋은 커피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나 언제나 무심하고 자유로운 자세로 손님의 취향을 존중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듯 커피에 대한 취향 또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야말로 커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건강과 사랑으로 조화롭기를 바라는 노자적 마스터의 자세다. 그녀가 세 번째로 빛나는 이유다.
단골가게가 있다는 것은 주인장과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인간적 신뢰와 존중이 담겨 있다는 말과도 같다. 사람들은 내게 어디를 그렇게 여기저기 바쁘게 싸돌아다니느냐고 묻지만, 사실 나는 여기저기 아무 데나 싸돌아다니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기엔 보기보다 너무나 까칠하고 까다롭다.
가는 곳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양할 뿐 사실은 늘 가던 곳만 간다. 사람 또한 늘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는데, 그들로 인해 또 새로운 누군가와의 접속이 생길 뿐이다.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믿을 사람들이 있을까?
사실 나는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목소리가 크고 웃음소리가 클 뿐 정작 내 이야기를 잘 풀어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나를 더 많이 알지도 모르겠다.
<메타버스 스쿨 혁명>을 출간하고 지난 두 달 동안 가장 즐거웠던 만남도 내 책을 꼼꼼하게 읽어준 독자들과의 만남이었다. 애독자들과는 굳이 긴 이야기가 필요 없다. 이미 책 속에 풀어놓은 나의 생각과 상상력과 제안들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카페 서래수를 찾는 단골손님들도 커피로 김정희 마스터와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다이아몬드 마운틴처럼 무미의 태도로 그림자처럼 낮은 곳에 처해 커피로 모두와 조화를 이루려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 손님들 또한 무위의 태도로 커피를 마신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훌륭한 ‘커피인’은 커핑과 기술을 뽐내지 않고, 손님에게 성내지 않으며, 맞서지 않고, 자신을 낮출 줄 안다. 이것을 일러 다투지 않는 덕이고, 다른 사람을 활용할 줄 아는 힘이며, 하늘의 뜻에 어울리는 지극한 도라고 한다.” - 노자도덕경 68장 패러디 -
나는 오늘도 주객이 모두 삶의 도를 깨쳐 나가며 성장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