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7
좋은 사람과 좋은 커피, 좋은 카페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아마도 ‘지속성’이 아닐까? 좋은 사람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삶을 나누며 살아가고 좋은 카페와 커피 또한 늘 찾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가족이 중요한 이유도 늘 함께 있기 때문이고 밥과 김치가 중요한 이유도 늘 있어야 하는 주식이기 때문인 것처럼 좋은 커피와 카페도 늘 다시 찾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 단골 카페가 있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아닐까? 무엇인가를 지속하고 항상 늘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생각과 의식을 만들어가기에 더욱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역사다.
오늘 아침 페루 게이샤(Peru Geisha) 커피가 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도 바로 그가 잉태된 땅의 역사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대 문명 잉카 문명의 불가사의한 소멸은 물론 스페인의 침략과 주변 국가들과의 분쟁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은 잉카의 후예들이 땀으로 키운 커피이기에 더욱 그 가치가 남다를지도 모르겠다.
고산지대의 열악한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고대로부터 지속된 역사와 자연과 농부들의 땀방울까지도 오늘 아침 마시는 한 잔의 커피를 가치롭게 만든다. 커피 자체가 가진 향미보다 잉카제국의 신비가 커피맛을 더한다고 해야 할까?
특히 페루의 전통 의상은 나를 늘 매료시켜왔다. 무엇보다 라마의 털로 직조한 라마 섬유가 너무너무 좋다. 알록달록한 수제 판초의 직조가 던져주는 에너지도 좋고 겹겹이 쌓아 입는 여성용 스커트의 볼륨과 지혜도 좋다. 그리고 그들의 모자는 또 얼마나 위트 있는가? 잉카제국부터 시작된 페루의 전통의상과 문화의 지속성 또한 놀라움 그 자체다. 여전히 판초가 그들의 옷일 수밖에 없는 특별함이 바로 지속성의 핵심일까?
지속적인 지식 탐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백과전서』 또한 계몽사상가들의 아지트로 활용된 프랑스의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에서 시작되어 26만에 완성되었다. 26년 동안 카페를 드나들며 26년 동안 끈질기게 지적 탐구를 이어나간 프랑스인들은 결국 프랑스혁명으로 자유와 인권이라는 세계관을 기반 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우리나라도 1927년 다방 ‘카카듀’가 서울 안국동 근처에 개업했다. 창업자인 이경손은 프랑스혁명 때 계몽주의 사상가와 시민들의 비밀 아지트 이름으로 다방 이름을 명명하며 일제강점기의 시대적 각성과 조선인 간 문화 교류를 시도했다. 또한 제비다방, 카페 쓰루 등 이상이 만든 다방은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려고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킨 지속적인 자유의지의 아지트였다.
하지만 ‘지속성’은 단순히 오래가서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도 커피도 카페도 품질이 중요하다.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것은 오래갈 수밖에 없는 콘텐츠가 빼곡히 담겼다는 말과도 같다. 적어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와 감동을 주는 좋은 경험이 공유되고 회자될 때 비로소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치든 ‘지속성’을 담보받게 된다. 내가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시는 이유다.
커피 한잔을 마셔도 보통 카페에서 커피를 단숨에 벌컥벌컥 들이켜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은 없다. 커피를 음미하며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천천히 일행과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두고 마시기 때문에 식어도 맛있는 커피 맛의 지속력은 매우 중요하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시간이 갈수록 별로인 사람은 관계가 멀어지기 마련이다. 마치 식어도 맛있는 커피처럼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관계가 무르익을수록 좋은 사람들과 결국 삶의 동행자가 되는 것은 하나의 이치다.
제주도 바닷가 펜션에서 오늘 아침 페루 게이샤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며 현무암 투성이 바다를 내려다본다. 용암이 분출한 작은 섬에서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마치 페루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의 토대가 되고 있는 커피나무처럼 끊임없이 생명의 양분을 끌어올려주는 ‘지속성’때문이리라.
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고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는 바닷가 검은 현무암들이 까만 페루 게이샤 커피콩처럼 갑자기 정답 하고 장하게 다가온다. 나도 작은 커피 알과 장한 현무암들처럼 가치롭고 감동적인 경험을 공유하는 글을 ‘지속적’으로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