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새벽Tea톡 143

by 김은형


알렝드 보통의 <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을 읽었다.

반사회적 인물로 기소된 소크라테스가 유죄 판결을 받고도

주저하거나 겁을 먹지 않고 대담한 태로도 자신의 철학적 과제에 대한 신념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는 알렝드 보통의 기록과 그가 해석한 소크라테스의 대담함의 근원이 눈길을 끌었다.

알렝드 보통은 말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고 놀라고 좌절하기 전에 자신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사람들의 논법과 사고방식의 건전성에 얼마나 무게를 부여할지를 먼저 고려해서 생각해야한다는 것이다.


진솔하고 치열하게 사고하는 비평가의 반대와 그저 염세와 질투심에 사로잡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비평가의 말을 같은 비중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이야기다.


오늘 아침 읽은 유시민 작가의 1년 구형 기사가 떠올랐다.

어쩌면 삶도 법도 관점과 해석의 문제다.


누군가의 혹평을 받고 있거나 대립되는 세력으로부터 압박을 받는다는 것은 억울하기도 하고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테스처럼 대담하고 여여하게 행동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그의 사유의 방식에 있다.


소크라테스는 일생을 아테네 시민들과 대화하는데 바친 사람이었기에 아테네 시민들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이미 군중들의 충동과 편견, 그리고 그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간파하고 있었기에 곧 닥칠 죽음 앞에서도 여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항아리의 물이 아래 항아리로 쏟아져 내려오는 짧은 시간동안 마지막으로 자신을 변론했다.


” 만약 그대들이 나를 죽음에 처하게 한다면,

그대들은 나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쉽게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죽으러가고, 여러분은 살러간다.누가 더 행복할 것이냐?

오직 신(神)만이 안다."


소크라테스의 예언은 맞았다. 그가 그의 존재감에 대해 예언한 것뿐만이 아니라 폴리스라는 도시국가의 시민들이 아고라 광장에서 개별적으로 만난 개인이 아니라 군중이 되었을 때 벌어질 일들에 대해 그는 이미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개인은 명철하되 군중은 어리석고 폭력적이 될 수 있음에 대해 깨어있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식 사유방식은 우리 자신의 무지와 편견과 폭력성에 깨어있도록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함을 일깨워 줌은 물론 우리 사회에 집단지성이 필요한 이유를 대변해주기도 한다.


혜암스님이 ”공부하다 죽어라!“고 말씀 하신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다.

자신의 소신을 밝히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를 내려면 신념이 필요하며, 신념을 가지려면 지성이 필요하고, 지성적인 사람이 되려면 공부를 해야하고 그 만큼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한다.


유시민작가야 말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지성이고 끊임없는 공부와 사유로 용기있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당당한 대한민국 집단지성의 리더 아닌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향해 말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신념이 필요한 일이다.


삶은 어짜피 각 개인이 만들어내는 ‘메타팩션’이다.

팩트 체크란 다만 환상일 뿐, 불가능에 가깝다. 본디 이야기와 기억력의 속성은 끊임없이 첨가되거나 끊임없이 제거 된다는 것이다. 사진조차도 객관적 사실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가능하지 않다. 원근법적 접근이 오로지 하나의 진실된 시각이고 관점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의 진실은 개별적인 관점에서 읽어낸 해석과 풀이들이 비슷하게 재현될 뿐이다. 나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나의 편인가?를 다시 한 번 꼼꼼히 따져보라! 오히려 그 반대일수도 있다. 우리 삶의 성숙과 성장이란 내가 누군가와 편을 먹고 있는가?가 아니고, 다른 편까지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은 부메랑이다. 독재를 행복으로 이해한 폴루스적 행복은 결코 행복인 적이 없었다. 디지털 중심의 미래 사회가 독점과 빅브라더의 독재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력은 사실 기우다.


한 사람보다 더 많은 스마트한 지성들이 득세하는 시대가 바로 미래사회의 초상이다. 이미 호모메타버스 Z, 2030세대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메타버스 세계를 가진 독자적 인간들이다. 세계에 속해있지만, 자신들만의 세계가 있고 그 안의 독자적 질서를 가지고 살기에 전체적 질서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언어는 오로지 사랑과 감동의 언어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새 시대를 열고 구조화하기 시작한 신인류다. 기관중심의 지난 시대 사유방식으로는 절대로 그들을 지배할 수 없다.


기원전 399년 봄, 70세의 나이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고 벌써 서기 2022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식 사유방식은 여전히 유효한 인간의 지혜다.


< 소크라테스식 사고방식 >

1.확고하게 상식으로 인식되는 의견을 하나 찾아보자

2.그것이 거짓이 될 수도 있음을 가정하고 다각적으로 사유한다.

3.예외가 발견되면 그 정의는 틀렸거나 아니면 최소한 불명확한 것이다.

4.최초의 의견은 이런 예외까지 고려해야하고 다시 수정해야한다.

5.새로 정리한 주장에서 다시 예외가 고려된다면 위의 사고방식을 다시 되풀이해서 생각하고 수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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