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적 1

금은형 단편 연재 소설

by 김은형

그날,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눈이 펑펑 내렸다.

특별히 크리스마스를 기다려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가 특별히 의미 있는 날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날도 어김없이 아침에 일어나 시댁에 아이를 데려주고 출근을 하고, 아무런 계획 없이 펑펑 쏟아지는 눈을 걱정하며 퇴근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으로 둘러싸인 롯데 호텔 옆을 지나치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지난밤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의 남편이 돌아가셨다는 말이 생각났고, 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케이크를 사야겠다는 생각 저변에는 크리스마스에 나도 모르게 들뜬 마음과 호텔 케이크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나의 허영심을 자극했음이 틀림없다.




케이크 가게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선생님께 드릴 나무 둥지 모양의 크리스마스 롤 케이크를 사고 , 딸아이에게 선물할 쵸코 산타 케이크를 하나 사고 나니 왠지 크리스마스의 들뜨는 기분이 느껴졌다. 결혼 전 캐럴송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실룩이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며 기분도 좋아졌다. 케이크 상자를 두 개 들고 등으로 문을 열고 나오다 들어오려던 사람과 살짝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코를 찌를 듯 상콤한 레몬향이 그에게서 풍겨져 왔다.

향수가 아니라 비누향인 듯, 어쩌면 저 남자는 호텔 사우나에 갔다가 바로 케이크 가게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난 고등학교 때부터 상큼한 비누향기가 나는 남자가 좋았다.


아주 웃기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비누향기 하나에 매료되어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를 일 년을 짝사랑한 적도 있었다. 하하하. 추억이 떠오르며 호텔 내부에 잔잔히 흐르는 캐럴송은 나를 조금 더 들뜨게 만들었고 바로 케이크 가게 옆 꽃집으로 향했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분홍 장미를 한 송이 사고, 선생님께도 꽃을 사드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장미꽃은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오늘은 꽃이 동이 났어요. 양란이라도 가져가시려면 사가세요. 싸게 드릴게요.”


양난을 산다는 것은 내 36년 평생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그래도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 아닌가? 그리고 이미 내 허영과 사치스러운 영혼이 기지개를 켜버린 상태였다. 망설이지 않고 양난을 두 대 샀다.




포장된 꽃과 케이크를 들고 호텔 정문을 나서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솜사탕을 송송 찢어서 뿌리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솜뭉치를 뿌리는 느낌이랄까? 그날의 눈은 참 많이 폭신하고 포근했다. 그러나 캐럴과 트리의 불빛이 내 맘을 흔들어 설레게 했다 손치더라도 내가 갈 곳은, 그리고 만날 사람은 뻔했다.


선생님 아파트에 들러 케이크 드리고, 지체 없이 딸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어쨌든 기분이 좋아진 나는 경쾌하게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가 다 가기 전까지 이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호텔 정문을 빠져나갈 즈음 백밀러로 우연히 어떤 남자가 손짓을 하며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다른 사람과 호텔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인가 보다 하며 커브를 틀었다. 그러나 몇 미터 못 가서 빨간색 신호 대기 등이 떨어졌다.


그런데 아까 손짓하며 달리던 버버리 차림의 남자가 내 차 앞에 서더니 나보고 창문을 내리라고 신호를 보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3.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끝내는 자와 시작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