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형 단편 연재소설
“ 그 케이크 때문에요. 케이크 가게에서 부딪히면서 참 무례한 사람도 다 있구나 생각하고 불쾌한 맘에 가게로 들어서는데 너무 익숙한 향기가 느껴지더라고요. ”
“ 무슨 냄새요? 저요? 빵집요? ”
“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 쓰시죠? ”
“ 어?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향수고, 지금 뿌리고 있어요. ”
“ 양난을 좋아하던 그 여자가 주로 썼던 향수가 바로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이었어요. 그런데 분명 그녀는 여전히 보스턴에 있을 텐데 깜짝 놀랐죠. 나오실 때 뒷모습만 봐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향기는 바로 그녀의 것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생각이 멈추니 어쩌면 그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려움과 함께 기대감을 동반하며 오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케이크도 지금 나가신 분이 사신 것과 똑같은 것으로 달라고 했더니, 두 종류의 케이크를 사셨다고 하더군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는 그녀와 쵸코 케이크를 나눠먹었었죠. 그래서 저두 서둘러 산타 쵸코 케이크를 하나 사서 나오며 혹시 그녀가 아닌지 당신 얼굴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차를 보게 된 것이고, 얼굴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차가 완전히 주저앉아 운전자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차를 멈추기 위해 뛰기 시작했던 거예요. 물론 당신은 그녀가 아니었죠.”
“ 왠지 죄송한데요? 하지만 참 재밌는 우연이네요? 양난과 샤넬 코코 마드모아젤. 사실 저두 선생님과 부딪히고 난 뒤 스치면서 레몬향 나는 비누냄새 때문에 어떤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하하하 ”
“ 이야기에 흥미가 생기는데요?”
“ 그럼 오늘 타이어 고쳐주신 감사의 마음으로 아름다운 소설 한 토막 들려드릴게요.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아주 한가한 느낌이었어요. 사람이 10명도 타지 않은? 그런데 그즈음 여학생들은 빈자리가 있어도 서서 가는 무언의 멋 내기가 유행이었죠. 그래서 그날도 서서 가고 있는데, 다음 정거장에서 어떤 남자가 차에 오르는 거예요. 감색 양복을 쫙 빼입은 아주 잰틀 한 느낌의 청년이 아니겠어요? 한눈에 홀딱 반했죠. 그가 제 곁을 지나 빈자리로 가서 앉는데 레몬향 비누냄새가 제 코에 확 스며드는 거예요.
앗! 너무도 아찔한 신선함과 상큼함이랄까? 프레쉬라는 영어단어의 개념을 그때 비로소 아주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떨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망설임과 설렘이 무엇인지를 그 남자와 함께 한 다섯 정류장 동안 한 번에 경험해버렸어요.
말을 붙일 사이도 없이 그 남자는 나보다 먼저 내려버렸고, 그가 내린 뒤 함께 따라 내릴 것을 그랬다는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죠.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이 왜 휴지와 같이 되어버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저에게 그 순간 더 중요한 것은 그 남자의 레몬향 나는 비누냄새와 방망이질 치는 가슴과 설렘이었을 텐데 저는 친구와의 약속에 따른 의리와 책임감 등에 기계처럼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죠.
윤리 시간에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는 법 매뉴얼에 쓰여 있었던 데로 친구와의 신의를 다하기 위해 절대로 한 눈을 팔지 않고 그를 배신하지 않고 두근대는 사랑의 느낌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죠. 그때 이후로 항상 레몬향이 첨가된 비누냄새가 나는 남자들에게 늘 호감이 갔어요. 지난여름 일본 여행에서 돌아올 때 버버리 애프터 쉐이브를 남편에게 선물한 것도 아마 그 추억의 한 조각이었을 거예요. 레몬향이 살짝 도는 프레쉬함이 그 쉐이브 로션에 깃들여 있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