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의 기적 4

금은형 연재 단편소설

by 김은형

“ 레몬향 좋아요! 사우나도 다녀오셨나 봐요? 에프터 세이브 뭐 쓰세요? 버버리? ”


지난여름 일본 여행을 다녀오면서 남편을 위해 레몬향이 첨가된 상큼한 느낌에 반해 버버리 에프터 세이브 로션을 샀던 차였기에 그렇게 물었다.


“ 아뇨, 이건 보스턴에서 유학할 때 쓰던 거예요. 그대로 가져와서 아직 쓰고 있는 것이죠. ”

“ 어? 그래요? 보스턴에 무슨 학교가 있죠? 전공은 뭘 했어요? ”

“ 3D.”

“ 3D? 그게 뭐예요? 어쨌든 공학 쪽인가 봐요? 그럼 이곳 테크노 벨리의 연구소에 다니시나 보네요? 박사님이시군요? 어느 연구소예요? 혹시 에트리? 제 친구가 그곳 연구소에 다녀서 한번 가본 적 있거든요. ”

“ 한 번에 그렇게 많은 것을 물어보면 무엇부터 대답해야 하죠? ”

“ 아무거나. 어느 연구소예요? ”

“ 에트리 맞아요. 거기서 연구하고 있어요. ”

“ 혹시 장서임 알아요? 내 친군데? ”


갑자기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너무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숨을 뱉어낸 뒤 말했다.





“ 연구소가 단순히 20-30명 일하는 곳이 아니에요. 몇 백명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어요. 그리고 분명한 것은 제가 일하는 파트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는 것이죠. 이제 모든 궁금증이 해결됐어요?

“ 아.. 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추운데 힘들게 일하시는데 어이없는 질문만 내뱉고... 정말 죄송해요. ”


그러나 그는 다시 아랑곳하지 않고 타이어를 갈아 끼웠다. 마치 늘 그 일을 해온 사람처럼 능숙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바라봤다.

여전히 펑펑펑 포근한 솜뭉치처럼 내려오는 눈!

마음이 더 따뜻해져 오며 나도 모르게 내 무릎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고이고 흩날리는 눈송이에 영혼을 실어 눈보라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세계! 일상의 피로와 버거움이 가뿐하게 날아가고 가벼운 영혼만이 눈송이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차가운 대기 속을 부유하기 시작했다. 가끔 그렇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마주하게 되는 순간에 나는 클라인의 깡통에 갇힌 파리처럼 그 어떤 세계의 존재도 아니었다. 3차원도, 2차원도, 4차원도 아닌 세계.




“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해요? 오늘 산 케이크가 어떤 케이크인지 생각났어요. 산타 쵸코 케이크 샀어요. 혼자 크리스마스이브 축하하려고요. ”

“ 네?...... 아.. 네. 그러셨군요. ”


눈송이에 빠져 혼이 나간 모습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내가 조용해진 모습이 이상했던지 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 그런데 나도 질문 하나 해도 돼요? ”

“ 뭔데요? 뭐든지 질문하세요. ”

“ 차 안에 꽂혀있는 꽃들 생화 양난 맞아요? ”

“ 아~~~ 네 , 맞아요. ”

“ 양난을 좋아해요? 양난 꽃을 사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크리스마스의 기적5.png


“ 아, 그게... 마침 장미꽃이 떨어져서 호텔 꽃집에 양난 밖에 없다고 해서요. 케이크와 함께 선물드리려고 샀죠. 양난 좋아하세요? ”

“ 제가 좋아했던 어느 여자가 좋아했었죠. ”

“ 그러셨구나! 꽃 드릴까요? 어차피 한 대는 저희 집에 가져가려던 참이었어요. 아이한테는 양난보다 핑크빛 장미가 더 어울릴 거예요. 가다가 다른 꽃집에서 다시 사면돼요. 무엇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까? 고민하던 참인데.. 정말 잘됐어요. 받아주실 거죠? ”

“ 싫습니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따름이지 대가를 바랐던 것은 아닙니다. ”

“ 저두 돈을 드리겠다는 것이 아니잖아요. 어찌 보면 생명의 은인과 같으신데... 받아주세요.”

“ 아뇨! 됐습니다. 이거나 빨리 마무리하도록 하죠. ”

“ 그럼 전 죄송해서 어떻게 해요. 이렇게 도움만 받고..... 참! 그런데 제 차가 펑크 난 것은 어떻게 알았어요? ”

타이어 나사를 조이던 그가 나의 질문에 다시 싱긋 웃었다. 참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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